김덕영 교수 20년연구 결산
국내 사회학 빈약한 토양에
“지식인으로서의 책임 느껴
”역사학·사회학·문화사 등
다양한 개별 과학 포괄한
베버의 ‘통합적 사고’ 보여줘
“요즈음 몇몇 젊은이들이 원(元)·명(明) 때의 경조부박한 사람들이 괴로움을 주관적으로 표현한 말들을 모방하여 (…) 당대의 문장인 것처럼 자부하며 남의 글이나 욕하고 고전적인 글을 깎아내리는데, 내가 보기에 불쌍하기 짝이 없다.”
조선 후기 대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며 경전 공부를 독려했다. 유교경전 문구들을 꼼꼼하게 연구하는 경학(經學)을 자기 학문의 뿌리로 삼았던 그로서는 고전을 도외시하는 세태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다. 지난 4일 만난 사회학자 김덕영(54) 독일 카셀대 교수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다산의 편지글 가운데 ‘원·명’을 ‘영(영국)·미(미국)’로 바꾸면 오늘날 우리 현실을 겨냥한 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 학계와 대학이 ‘고전적 경학’으로서 뿌리까지 탐구해야 할 것들을 내버려둔 채, 영미·일본 학계의 손을 거쳐 보기 좋게 만들어진 것들만 주무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막스 베버(1864~1920), 게오르크 지멜(1858~1918) 등 서구 근대 사회 이론의 토대를 만든 독일권 학자들의 지적 세계를 깊이 탐구해온 김 교수가 최근 베버에 대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중간 결산한 1000쪽 넘는 대작 <막스 베버-통합과학적 인식의 패러다임을 찾아서>를 펴냈다. 독일에 유학해 베버 사회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20여년 동안 자신이 캐낸 것들을 바탕으로 삼아 베버라는 거대한 ‘지적 채석장’의 전체 모습을 그려낸 노작이다. 베버의 지적 세계를 조망하는 개론서이자 베버가 제시한 ‘통합과학적 인식의 패러다임’에 천착한 연구서 성격도 함께 지녔다.
김 교수는 오늘날 사회학자가 파고들어야 할 ‘고전적인 경학’으로 “콩트·스펜서·마르크스·베버 등 고전 사회학과 현대 사회학 거장들이 구축한 지적 세계, 그리고 인접한 철학·심리학·경제학·역사학 등의 고전”을 꼽는다. 그러나 ‘베버에 대해 좋은 책 없느냐’는 질문에 ‘없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국내 사회학계에서 이 고전들에 대한 연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는 진단이다. 지식의 ‘원시 축적’ 없이 베버·마르크스·하버마스 등에 대한 피상적 논의만 반복되며, 절대다수의 통계사회학과 소수의 이념사회학에 눌려 이론사회학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베버 연구자로서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크게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베버인가? 김 교수는“베버 연구는 곧 ‘근대’에 대한 연구”라고 단정한다. 베버는 서구 근대의 합리성을 만든 특수성을 밝혀내는 것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고, 이 때문에 ‘서구중심주의자’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의 토대는 오직 근대 속에서 찾을 수 있기에, 베버는 근대에 사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연구 대상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책에서 김 교수는 ‘통합과학적 인식’이라는 열쇳말로 베버의 지적 세계를 열어 보인다. 통합과학이란 개별 학문 사이의 담을 무작정 허무는 것이 아니다. 연구자의 주체적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인식을 섭렵해나가는 것으로, ‘학제 간 연구’에 가깝다.
본디 법학자였던 베버는 ‘하빌리타치온’(독일 대학교수 자격)을 따기도 전에 경제학에 발을 담갔다. 독일 엘베강 동쪽 지역의 농업 노동자 실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뒤로 1894년 프라이부르크대학의 경제학·재정학 교수로 초빙돼 명실상부한 경제학자가 됐다.
베버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 오스트리아 한계효용학파 등 기존 경제학 조류들을 창조적으로 종합해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유의미한 행위에 기반한 ‘문화과학’이란 상위 개념으로 역사학·사회학·문화사·국가학 등 다양한 개별 과학들을 포괄해나갔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의 주체적 행위를 밝혀내는 것이었고, 그 행위의 결과를 문화라는 관점으로 바라봤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이는 기존의 집단주의적인 주술적 세계로부터 탈피해, 보편적인 존재로서 개인이 체계적으로 분화하고 다원화하는 ‘근대’ 합리성의 원리이기도 했다. 신학을 비롯해 경제학·역사학·종교학·철학을 입체적으로 교차시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에 의해 성립된 근대 자본주의 정신과 그 역사적 담지자인 서구 시민 계층의 발달 과정을 추적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이런 베버의 지적인 역정을 가장 잘 드러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베버는 실체로서의 ‘사회’를 인정하지 않고 해체하려 했다”고 말한다. “개인들의 행위에 따라 이뤄지는 관계·조직·규범 따위를 ‘사회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문화과학·사회과학을 추구했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는 사회나 국가를 실체화하고 개인을 그 부속기관으로 보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는데, 그가 추구한 통합과학적 인식은 인간 행위 중심의 사유체계를 구축하고 그 토대 위에서 개인들의 상호작용을 인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베버의 통합적 사고에 기대어, 김 교수는 한국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환원적 근대화’라는 개념을 이론화하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근대화의 대상과 영역이 전체 사회가 아닌 경제, 그 가운데에서도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률이란 점에서, 또 그 주체가 국가와 그 기능을 움켜쥔 소수 파워 엘리트, 기술 관료들이란 점에서 한국의 근대화는 환원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데 베버의 인식틀로 보면, “근대화는 다양한 삶의 영역을 포괄하는 보편사적 과정이며, 경제가 근대화된다고 해서 경제 외적 영역이 저절로 근대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김 교수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근대성과 근대적 합리성은 ‘개인’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본다. 베버에게 국가는 ‘개인이 특정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가망성 또는 기회’로 파악되는데, 개인의 행위가 없으면 국가 또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체로서의 사회를 부정한다는 뜻에서 김 교수는 이를 ‘사회 없는 사회학’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의 ‘환원적 근대화’에 대한 이론적 틀을 내년 게오르크 지멜의 <돈의 철학> 번역본과 함께 내놓을 단행본 저작 <돈과 영혼>(가제)에서 제시하고, ‘사회 없는 사회학’에 대한 논의는 <사회, 사회학>(가제)이라는 저작에서 자세히 펼칠 계획이다. 체계이론의 대가 니클라스 루만(1927~98)과 베버를 비교하는 <루만과 베버>(가제)도 준비중이며, 베버 전집의 저작들 가운데 가장 난해한 <방법론> 번역도 내놓을 예정이다. 인터뷰 중에도 그는 “지식인은 쓴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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