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희 (54·능률교육 대표)
[이사람]‘서울대 농촌법학회 50년사’ 출간 기획한 김준희 회장
61년 결성~85년 해체 25년 활동
농활에서 반유신 투쟁 선봉으로
‘고난의 꽃봉오리…’ 내일 출간기념회 “저보다 1년 후배인 77학번 회원들이 시위 사건으로 1학년도 못 마친 채 무더기로 구속되거나 제적과 무기정학을 당하는 고난을 겪었어요. ‘소년수’로 수감된 진재학(전 <한겨레> 기자)군이 대표적이죠. 그 ‘꽃 같은 후배’들은 물론이고, 반유신의 첫 신호를 쏜 고 이범영을 비롯해 1970~80년대 반독재 투쟁의 현장에서 여러 선후배들이 쓰러졌지만 지나고 보니 결코 사라진 게 아니었어요. 저마다 시대의 고민을 감당하고 올바른 삶의 길을 걷고자 애썼던 ‘진정성’이 면면히 살아 이어져왔더라구요.” 서울대 학생운동의 한 축이었던 이념서클 ‘서울대 농촌법학회(농법회)’의 결성 50돌 기념으로 최근 50년사를 기획·출간한 김준희(54·능률교육 대표·사진) 회장이 설명한 책의 제목 <고난의 꽃봉오리가 되다>의 내력이다. 19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50년사 출간기념회를 마련하는 그는 “처음 결성한 61년부터 자진해체한 85년까지 약 270명의 회원 가운데 30여명이 직접 쓴 회고담과 수십명의 증언을 모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정리해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현대사이자 민주화운동사가 됐다”고 말했다. 집필 작업은 84학번 회원이자 신문기자 출신인 이명재(경희대 강사)씨가 맡았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공동발간했다. 4·19혁명의 열기를 타고 61년 5월 출발한 농법회는 당시 가장 중요한 현안이었던 농촌문제를 고민하는 서울 법대생들의 모임이었다. 세미나를 통해 역사와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농활’(농촌활동)이라는 현장체험을 주로 했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서울대 종합화에 따라 계열별 입학을 하면서 법대만이 아니라 서울대 전체 조직으로 확대됐고, 유신독재를 거치며 비공식 조직(언더 서클)으로 변모했다. 공안당국의 집중 감시 탓에 ‘농법회’라는 이름을 감춰야 했고, 대신 ‘패밀리’ 혹은 ‘집’으로 불렸다. 사회과학회, 경제법학회, 대학문화연구회, 후진국경제연구회 등과 더불어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서클 이기주의와 분파주의에 대한 비판과 총학생회가 운동의 중심에 나서면서 해체됐으나 농법회의 정신은 회원들 사이에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농법회의 성격을 진보지향으로 전환하는 한 계기였던 63학번 이남곡 논실마을학교 이사장은 “그 시절 갖게 된 생각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방향타 구실을 했다”고 썼다. “법대나 상대를 가서 세속적 성공을 이루는 게 목표였지만 농법회를 만나면서 ‘정신적 쓰나미’를 겪었다”(75학번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 “내 모교는 서울대라기보다는 농촌법학회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78학번 유시민 전 의원), “농법회는 정신적 고향이다”(77학번 윤석인 희망제작소 소장) 등등 회원들의 고백을 통해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밖에 최규성, 이원영, 심규철, 심재철씨 등 전·현직 국회의원과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도 농법회 출신이다. 책은 비매품으로 한정 부수만 제작해 공공도서관과 연구소 등에 기증할 예정이다. “개별 이념서클의 역사를 정리해낸 사례로는 처음이라고 들었다”는 김 회장은 “아직도 고문과 투옥의 트라우마 때문에 입을 열지 않는 회원들도 있어 다 담지는 못했지만 현대사 연구와 학생들의 역사 교육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최필립, 지난해 12월부터 부산일보 지분매각 추진한듯
■ 투표율 ‘거품’…야권 단일후보 승산은 ‘착시’
■ 경찰까지 가담한 ‘도둑들’
■ LIG는 부실 숨기고 증권사는 “사라”…‘서민 쌈짓돈’ 긁어냈다
■ ‘내곡동 특검’ 다스 정조준…‘MB 실소유주’ 논란 끝낼까
■ “임용고시 준비 중 찾아온 슬럼프, 이겨낼 방법 없을까요?”
■ 장발단속…유신 시절엔 이랬지
농활에서 반유신 투쟁 선봉으로
‘고난의 꽃봉오리…’ 내일 출간기념회 “저보다 1년 후배인 77학번 회원들이 시위 사건으로 1학년도 못 마친 채 무더기로 구속되거나 제적과 무기정학을 당하는 고난을 겪었어요. ‘소년수’로 수감된 진재학(전 <한겨레> 기자)군이 대표적이죠. 그 ‘꽃 같은 후배’들은 물론이고, 반유신의 첫 신호를 쏜 고 이범영을 비롯해 1970~80년대 반독재 투쟁의 현장에서 여러 선후배들이 쓰러졌지만 지나고 보니 결코 사라진 게 아니었어요. 저마다 시대의 고민을 감당하고 올바른 삶의 길을 걷고자 애썼던 ‘진정성’이 면면히 살아 이어져왔더라구요.” 서울대 학생운동의 한 축이었던 이념서클 ‘서울대 농촌법학회(농법회)’의 결성 50돌 기념으로 최근 50년사를 기획·출간한 김준희(54·능률교육 대표·사진) 회장이 설명한 책의 제목 <고난의 꽃봉오리가 되다>의 내력이다. 19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50년사 출간기념회를 마련하는 그는 “처음 결성한 61년부터 자진해체한 85년까지 약 270명의 회원 가운데 30여명이 직접 쓴 회고담과 수십명의 증언을 모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정리해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현대사이자 민주화운동사가 됐다”고 말했다. 집필 작업은 84학번 회원이자 신문기자 출신인 이명재(경희대 강사)씨가 맡았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공동발간했다. 4·19혁명의 열기를 타고 61년 5월 출발한 농법회는 당시 가장 중요한 현안이었던 농촌문제를 고민하는 서울 법대생들의 모임이었다. 세미나를 통해 역사와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농활’(농촌활동)이라는 현장체험을 주로 했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서울대 종합화에 따라 계열별 입학을 하면서 법대만이 아니라 서울대 전체 조직으로 확대됐고, 유신독재를 거치며 비공식 조직(언더 서클)으로 변모했다. 공안당국의 집중 감시 탓에 ‘농법회’라는 이름을 감춰야 했고, 대신 ‘패밀리’ 혹은 ‘집’으로 불렸다. 사회과학회, 경제법학회, 대학문화연구회, 후진국경제연구회 등과 더불어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서클 이기주의와 분파주의에 대한 비판과 총학생회가 운동의 중심에 나서면서 해체됐으나 농법회의 정신은 회원들 사이에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농법회의 성격을 진보지향으로 전환하는 한 계기였던 63학번 이남곡 논실마을학교 이사장은 “그 시절 갖게 된 생각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방향타 구실을 했다”고 썼다. “법대나 상대를 가서 세속적 성공을 이루는 게 목표였지만 농법회를 만나면서 ‘정신적 쓰나미’를 겪었다”(75학번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 “내 모교는 서울대라기보다는 농촌법학회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78학번 유시민 전 의원), “농법회는 정신적 고향이다”(77학번 윤석인 희망제작소 소장) 등등 회원들의 고백을 통해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밖에 최규성, 이원영, 심규철, 심재철씨 등 전·현직 국회의원과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도 농법회 출신이다. 책은 비매품으로 한정 부수만 제작해 공공도서관과 연구소 등에 기증할 예정이다. “개별 이념서클의 역사를 정리해낸 사례로는 처음이라고 들었다”는 김 회장은 “아직도 고문과 투옥의 트라우마 때문에 입을 열지 않는 회원들도 있어 다 담지는 못했지만 현대사 연구와 학생들의 역사 교육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최필립, 지난해 12월부터 부산일보 지분매각 추진한듯
■ 투표율 ‘거품’…야권 단일후보 승산은 ‘착시’
■ 경찰까지 가담한 ‘도둑들’
■ LIG는 부실 숨기고 증권사는 “사라”…‘서민 쌈짓돈’ 긁어냈다
■ ‘내곡동 특검’ 다스 정조준…‘MB 실소유주’ 논란 끝낼까
■ “임용고시 준비 중 찾아온 슬럼프, 이겨낼 방법 없을까요?”
■ 장발단속…유신 시절엔 이랬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