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높은 곳을 보며 꿈을 키울 필요도 있지만, 낮은 곳을 보며 자족과 감사, 나눔을 고민할 줄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어린이책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강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린이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 어린이상 수상자들의 활동을 전하는 <어린이가 어린이를 돕는다>는 둘 모두를 충족시켜준다. 어린이노동·성매매·난민·에이즈·인종차별 등 제3세계 어린이들의 인권을 짓밟는 고통 앞에서 마음이 절로 낮은 곳으로 향하며, 움츠러들지 않고 행동으로 변화를 이끌어낸 어린 활동가들의 삶에서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이크발 마시흐(1회 수상자)는 네 살 때 카펫 공장으로 팔려갔다. 이때부터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하루 열시간 이상 카펫 실매듭을 엮었다. 손에서 진물이 날 정도로 일했지만 일당은 사탕 1개값인 1루피(약 12원)였다. 그마저도 엄마와 형이 진 빚을 갚기 위해 털렸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면 업주와 한통속인 경찰이 이크발을 공장으로 돌려보냈다. 탈출과 매질당하기를 몇 차례 반복한 끝에 이크발은 ‘노예노동해방전선’(BLLF)을 만나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파키스탄에서 노동으로 학대당하는 800만명의 친구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크발은 열두살 때 ‘어린이 카펫 노동자 협의회’를 만들었고, 전세계에 파키스탄의 어린이 노동 실태를 알리는 선구자 구실을 했다.
지구 반대편 캐나다에 사는 크레이그 킬버거(7회 수상자)는 어느 날 신문에서 이크발의 사연을 읽었다. 파키스탄에서 어린이 노동 반대 활동을 벌이다 총에 맞아 숨졌다는 기사였다. 동갑내기 소년의 충격적인 죽음을 마주한 킬버거는 작은 지식과 감동을 몸으로 실천했다. 수업시간에 친구들에게 이크발 이야기를 알렸고, ‘프리 더 칠드런’(어린이에게 자유를)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만화만 읽던 꼬마는 어느새 어린이 노동 자료를 찾아다니는 소년으로 변해갔고, 그 변화는 100만여명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회원수가 1만여명으로 불어난 ‘프리 더 칠드런’은 35개국에 400개가 넘는 학교를 세웠다.
킬버거가 어른들에게 내리친 죽비 같은 일침은 새겨들을 만하다. “어른들은 다른 세계 아이들이 노예로 팔려가는 것에는 놀라지 않고, 어린아이들이 단체를 만들고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에 더 놀라워해. 뭔가 뒤바뀐 것 같지 않니?”
어른들의 ‘뒤바뀐’ 사고에 갇혀 ‘지디피(GDP) 15위 나라’ 밖의 삶을 배우지 못한 어린이, 청소년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나라를 빼앗긴 티베트 어린이들의 인도 다람살라 학교 이야기, 캄보디아 소녀들의 성매매 탈출기 등은 지구촌 어린이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넓혀주지만, 세계 역사에 대한 지식도 제공한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그림 길벗스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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