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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믿습니까? 뭣하러…

등록 2012-10-26 20:44

무신예찬
피터 싱어·마이클 셔머·그레그 이건 외 지음, 김병화 옮김/현암사·2만5000원
내가 신의 존재를 안믿는 이유
세계 지식인 50명이 쓴 에세이

“믿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옥으로 끌고가려는 존재를
숭배할 생각은 없다”

“내가 쓰나미서 살아남아
신이 선하다고 말한다면
남이 익사해도 신은 선한가”

우리는 왜 무신론자인가? <무신예찬>(원제: 50 Voices of Disbelief-Why We Are Atheists, 2009년)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쟁쟁한 과학자, 철학자, 과학소설 작가, 정치 활동가, 대중적 지식인 50명이 이 질문에 각양각색으로 대답한 짤막한 에세이들을 묶은 책이다.

<진화와 기술 저널>의 편집장 러셀 블랙퍼드와 퀸스대학의 우도 쉬클렝크 철학교수가 엮어낸 이 책은 무신론에 대한 설명서나 입문서가 아니다. 종교적 신앙을 거부한다는 점에서만 공통점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에게 매우 사적인 체험과 생각에 근거해 그 이유를 들려 달라고 주문해서 엮은 책이다.

왜? 종교적 광신주의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엮은이들은 자신이 믿는 신을 함께 믿지 않는 타인들을 적으로, 타도 대상으로 삼는 광신주의자들의 편협한 불관용과, 그들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이 우리 개인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현실을 더는 좌시해선 안 된다고 얘기한다. 위기감은 2001년 9·11 사태와 미국의 아프간·이라크 침공, 잇따른 테러 사건으로 극도로 높아졌다. 미국에선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이 정치에까지 깊숙이 개입하고 교과서의 진화론 내용 폐지 운동까지 벌였다. 이 땅의 보수 기독교도 그걸 고스란히 모방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스티븐 로 런던대 헤이스롭 칼리지 철학교수는 말한다. “만일 존재한다면, 신은 분명 전능하고 무한히 선할 것이다. 그런데 그 존재는 또한 논리적으로 악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다. …무한히 선하므로 악의 존재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악은 존재하므로, 여기서 논리적으로 유대교-그리스도교적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얘기를 원용한 것이다.

독일 생식의학회 대변인 에드가 달, 종교철학자 니컬러스 에버릿 전 이스트앵글대 교수, 그리고 이슬람권인 이란의 여성차별저항조직 대변인 마리암 나마지도 ‘신의 부재’를 입증하기 위해 모두 비슷한 논리를 전개한다. 전능한 신이 ‘약간의’ 악을 허용하는 것은 인간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들의 자유의지를 북돋움으로써 선의 가치를 한층 더 높이기 위해서라고 유신론자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전능의 신이라면 인간을 만들 때 처음부터 자유의지를 북돋고 선의 가치를 더 높일 필요가 없는 완벽한 존재로 만들면 된다. 악으로 단련시킬 이유가 없다.

설사 악을 선과 양립시키더라도, 그것이 더 큰 선을 위해서라면 그 둘을 상쇄할 때 결과적으로 선이 악보다 더 커야 한다. 그런데 세상이 그런가? 수십만이 죽은 쓰나미라는 악을 통해 인간이 얻은 교훈이 수십만의 인간 생명 가치보다 더 컸던가?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수천만의 희생자를 낳은 세계대전의 교훈적 가치가 나치가 저지른 악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컸나?

“악당이 내 다리에 총을 쏘았는데 어떤 자비로운 사람이 나를 돌봐준다면, 그건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자비가 워낙 선하기 때문에 애당초 악당이 나를 쏘았다는 사실 자체도 정당화해준다고 말한다면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차라리 총 쏘는 일 없고 자비도 없는 편이 더 나은 세상일 것이다.”(니컬러스 에버릿)

우리 민족에게 어떤 큰 교훈(선)을 주려고 신은 나라를 남의 식민지로 만들고, 수십만을 성노예로 만들고, 나라를 분단하고, 전쟁으로 수백만을 죽게 하고, 1천만 이산가족이 고통(악)을 당하게 했을까? 그게 아니라면 논리적으로 신은 전능하지 않거나, 선하지 않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하지 않는가.

“올림픽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면 신이 선하다고 하지만 4등이나 5등을 했을 때 신이 악하다고 말하진 않는다. … 내가 이긴 건 신이 선하기 때문이고, 지는 건 신의 탓이 아니다. 내가 쓰나미에서 살아남으면 신은 선하고, 다른 사람들이 쓸려가거나 익사하면 그런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잡지 <철학자>의 부편집장 오필리아 벤슨)

“믿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를 지옥으로 끌고가려는 존재를 숭배할 생각은 없다. … 누군가가 마지막에 회개함으로써 천국에 자리를 얻었다고 장담하는 말을 들으면 특히 더 그렇다. 무슨 이런 엉망진창인 기획이 있냐고!”(미국 웰스칼리지 철학교수 로라 퍼디)

“예수가 와서 죄를 없애고 죽음을 없애버린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죽은 지 2000년이 지났는데도 인류는 왜 여전히 죽고, 예수의 은총으로 구원받았다는 추종자들까지도 왜 대부분은 끔찍한 상황에서 죽어야 할까?”(나이지리아 생명윤리학회 회장 피터 아데고크)

“세계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이다. 하늘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이 오직 한 번뿐임을 깨닫고 나면 당신은 … 스스로의 신으로서 자신의 삶을 완전히 통제하고 양심적인 행동과 자기결단을 통해 자신의 기도에 답할 능력을 갖게 된다. 상상의 친구는 필요하지 않다.”(필라델피아 자유사상협회 창설자 마거릿 다우니)

요컨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불행해지진 않는다. 오히려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때는 열렬한 신앙인이었던 다수의 필자들은 얘기한다. 우리 삶의 일회성과 우연성을 깨닫고, 그로 인한 근원적 고독을 끌어안는다면, 그걸 피하려고 입증할 길 없는 구원에 매달려 삶을 낭비하지 않고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고 사랑하며 더 보람차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적으로 하찮은 존재다. 공간에서는 한 점에 불과하고 시간에서는 한 찰나에 불과한, 헤아릴 길 없이 미미한 존재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에게만큼은 중요해질 수 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우리 서로에게만은 말이다.”(작가 데일 맥고원)

글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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