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매운 눈꽃>을 낸 이동하 작가가 10월31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원주/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동하 소설집 ‘매운 눈꽃’
귀농 문막집서 사는 이야기 등
단편 10편에 자전소설처럼 엮어
“나이 들수록 옛일 돌아보게 돼” <장난감 도시>의 작가 이동하가 <우렁각시는 알까?>(2007) 이후 5년 만에 여덟 번째 소설집 <매운 눈꽃>(현대문학)을 내놓았다. 대학(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정년퇴직한 뒤 쓴 단편 열 편이 묶였다. 수록작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추억한 작품 넷이 앞부분에 배치되었고, 뒤의 다섯 편은 2009년 ‘귀농’한 강원도 원주 문막 산골 동네를 무대로 삼았다. 그 사이에 있는 <감나무가 있는 풍경>은 유년기의 추억과 귀농한 문막 집의 이야기를 아우른 작품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어 주는 가교와 같은 구실을 한다. <감나무가 있는 풍경>에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부제가 달렸는데, 사실을 말하자면 책에 묶인 단편 열 편 모두가 일종의 자전소설 연작처럼 읽히기도 한다. 수록작들을 근거로 작가의 지난 삶을 재구성해 보자면, 우선 “그의 어린 시절은 (집 뒤란의) 감나무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감나무가 있는 풍경>) 비록 구새먹긴 했어도 둥치가 어른 팔로 몇 아름이나 되었던 이 큰 나무에서 어린 시절 작가는 봄이면 바람에 떨어진 감꽃을 주워 먹었고 여름에는 감나무 가지 위에 올라 해질녘 풍경에 눈과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피난길에 올랐던 식구들과 헤어진 소년이 작가의 집에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감나무가 있는 풍경>), 국민방위군의 후송 장정 대열에서 도망치다가 총상을 입고 반편이가 된 천수 아재는 마을 머슴으로 부림을 받다가 외롭고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천수 아재를 추억함>). 한편 나이를 속여서 군에 지원했던 삼촌은 피난민처럼 지쳐빠진 몰골로 집에 돌아왔는데, 군에서 몰래 가지고 나온 소총으로 강도질을 하다가 붙잡히는 바람에 작가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야만 했고, “그때부터 길 위의 삶이 시작된 셈이었다.”(<감나무가 있는 풍경>) “온통 결핍뿐이던 성장기”(<아름다운 환멸>)를 거쳐 작가는 또래들보다 몇 해 늦게 대학에 입학한다. “대학 건물 뒤쪽의 버려진 채석장 풍경”이 “우리들의 내면 풍경”(<매운 눈꽃>)을 대변해 주는 듯했던 그곳에서 그는 미대 여학생을 상대로 풋풋한 연정을 품었다가 친구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쓸쓸하게 사랑을 접게 된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줄 알았던 인연은 그 뒤에도 15년 남짓의 터울로 되풀이 이어져 그는 결국 여학생의 임종 자리에까지 입회하게 되는데, 책 제목을 낳은 아래 인용문은 아름답고도 아픈 추억으로 남은 청춘의 한 순간을 이렇게 포착한다. “우리의 마음 저 안쪽 어딘가에는 빙벽에 박힌 눈꽃처럼 어느 순간 정지한 사물들이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얗게 남아 있었다.” 정년퇴직 뒤 마련한 문막 시골집 마당에 감나무 묘목 두 그루를 사다 심는 것으로 ‘귀농’ 의식을 대신한(<감나무가 있는 풍경>) 작가는 부인과 단둘이 텃밭 농사를 짓는 틈틈이 마을 사람들을 관찰하고 관찰 결과를 소설로 옮긴다. “어느 날 느닷없이 농사일을 팽개치고 방구석에 틀어박힌”(<시인과 농부>) 주 노인, 핏줄과 상관없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일구어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족>), 가는귀먹은 여든두 살 김부돌 할머니와 건망증 심한 일흔네 살 양산댁이 자매처럼 서로 의지하며 사는 노년의 풍경(<아름다운, 그러나 조금은 쓸쓸한>) 등이 그것들이다. 지난달 31일 문막 시골집에서 만난 작가는 “수구초심이랬다고 나이가 들수록 옛일을 더 자주 돌아보게 된다”며 “지난 삶의 어리석음과 후회되는 대목이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대학 시절이 가장 어설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원주/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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