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연작소설 ‘뤼미에르 피플’
<표백>으로 지난해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장강명씨가 낸 연작소설집. 제목의 뤼미에르는 소설 속 서울 신촌에 있는 대형 오피스텔의 이름이다. 이 빌딩의 801호에서 810호까지 8층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10편을 묶었다.
우선 등장인물들을 관통하는 유사점이 보인다. 801호의 줄담배 피우는 임산부와 편의점 알바 소년, 802호의 전신마비된 중년 남자와 룸살롱 호스티스, 나이트클럽 웨이터 커플, 805호의 매로 돈을 버는 채무자, 806호의 인터넷 여론조작 업체 멤버들, 809호의 알코올중독자 엄마와 엄마의 자살에 동조해 자해하는 소년 상호…. 이들은 모두 사회의 주류 또는 중심에서 이탈해 있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중년의 일중독자가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걸 경험하면서 시작되는 ‘모기’는 현대인의 실존적 가치를 묻는 작품이다. 카프카의 <변신>의 맥을 이으면서도 대한민국의 현재라는 시대성을 신랄하게 담았다. ‘과거의 행복했던 일들을 더듬어보니 주로 남자의 행복은 성취와 관련이 있었다’는 고백처럼, 평생 동안 오로지 목표를 향해 달려왔지만 정상의 턱밑에서 좌절한 중년 남자와 애초에 목표는 있었지만 수렁에 점점 빠져가면서 그 목표조차 희미해져가는 젊은 청춘의 이야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다.
‘삶어녀 죽이기’는 신문 인터뷰에 등장했다가 인터넷상에서 공격받은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인터넷 여론조작의 메커니즘을, 르포처럼 섬뜩한 사실감으로 전달한다. 반면, 현실에 제대로 발 디디지 못하는 인물을 박쥐 같은 ‘반인반수’로 묘사한 <박쥐인간> 등의 일부 단편들은 기이한 환상성을 뿜어내면서 이 작품집 전체에 독특한 개성을 입히고 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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