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유대주의 ‘증오범죄’ 둘러싼 음모
프라하의 묘지 1, 2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각 권 1만3800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프라하의 묘지>는 2010년 10월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된 뒤 거센 비판과 논란을 불러왔다. 19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반유대주의 문서를 위조한 인물 시모네 시모니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로 알려진 문제의 문서는 인류를 고통에 빠뜨려 온 온갖 문제의 배후에 유대인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을 퍼뜨리는 데에 기여했다. 1921년 <런던 타임스>에 의해 허위임이 밝혀졌음에도 이 문서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의 근거로 동원되는 등 만만찮은 해악을 끼쳐 왔다. ‘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신조로 삼는 시모니니가 19세기 유럽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이 괴문서를 비롯해 온갖 종류의 증오범죄 및 음모날조에 종사해 온 이력을 그 자신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것이 이 소설의 형식이다. 비판과 논란은 주로,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순진한 독자들이 자칫 시모니니가 주창하는 반유대주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데에 집중되었다. ‘작가 후기’에서 에코는 “그(=시모니니)는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있다”고 썼는데, 그는 구미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속임수에 바탕을 둔” 이라크전쟁, 그리고 있지도 않은 공산주의자들의 체제 전복 위협을 무기 삼아 선거에서 승리했던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등을 그 사례로 들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몸의 한계’로 차별의 한계 넘기
거부당한 몸
수전 웬델 지음
강진영·김은정·황지성 옮김
그린비·2만원 어느날 갑자기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된다면? 보이지 않게 된다면?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우리는 불안에 휩싸인다. 굳이 사고가 아니더라도, 노화만으로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 된다.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 젊었을 때 당연히 하던 일들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젊음과 건강함을 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몸은 사회로부터 ‘거부당할’ 가능성에 늘 노출돼 있다. 30년 가까이 뇌척수염을 앓아온 여성주의 철학자 수전 웬델은, 장애는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 구조와 인식의 변화로는 보상될 수 없는 몸의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장애와 질병을 지닌 사람들 또한 ‘정상적인 삶’의 범주에 넣고, 이들의 고통과 경험을 적극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죽음과 장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시각을 연장시켜, 낙태·안락사 등엔 ‘장애인의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전제가 숨겨져 있음을 간파한다. 이는 장애인들의 복지와 안정을 위해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웬델은 이런 맥락에서 돌봄 노동의 재평가가 필요할 뿐 아니라 여기에 장애 여성의 입장을 반영함으로써 기존 여성주의 윤리학의 도덕적 전망을 넓힐 수 있다고 강조한다. 출판사 그린비가 기획한 ‘장애학 컬렉션’의 두번째 저작.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르네상스의 발견은 개인 아닌 ‘자아’
자아와 타자를 찾아서
임병철 지음
푸른역사·2만5000원 르네상스가 ‘문예부흥이며, 위대한 개인의 탄생’이었다는 통념은 19세기 문화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1818~1897)의 해석에서 기원했지만, 20세기 탈근대주의자들의 십자포화를 맞는다. 시대와 사회, 역사를 초월한 자율적 영혼, 곧 ‘개인’이 14~16세기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문화에서 처음 발견된다는 그의 견해는 근대 엘리트 남성의 낭만적 시각에 불과하다는 비판이었다. 르네상스 지성사를 연구해온 임병철 신라대 교수의 <자아와 타자를 찾아서>는 이런 통념과 비판의 틈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당대 인간과 타자에 대한 관념의 변화상을 추적한다. 단테, 페트라르카, 알베르티 등 14~16세기 활동한 이탈리아의 지식인, 상인, 여행가 등이 남긴 저서와 서간 등에 대한 독해를 바탕 삼아, 지은이는 당대인들에게서 개인 아닌 ‘자아’를 끄집어낸다. 그들은 자의식 충만한 개인이 아니라 중세가 해체되는 당대의 유동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행동 양식과 의미, 곧 자아의 표현을 배우처럼 연기해야 했던 사회적 존재였다는 것이다. 르네상스기가 서유럽의 정체성을 규정한 잣대라기보다 고전 전통의 계승을 둘러싸고 세계가 각축한 시대였다는 시각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대 인간들은 세계 속에서 불안하게 부유하는 자아상을 지니고 있었기에, 모두가 균질하지 않은 존재였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정주영·이병철·구인회가 잡은 ‘기회의 신’
경영의 신
정혁준 지음
다산북스·1만5000원 긴 앞머리에 뒤통수는 대머리. 고대 그리스 조각가 리시포스가 만든 카이로스의 모습이다. 그는 제우스의 아들로 ‘기회’의 신이다. 기회는 앞에 두면 잡을 수 있지만, 한번 지나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 리시포스가 카이로스의 앞머리를 무성하게, 뒤통수를 대머리로 만든 건 이런 이유에서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연작으로 집필중인 <경영의 신>은 바로 이 기회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한국, 일본, 미국의 1세대 기업 창업주들. 그 첫번째 편인 <경영의 신1-누구의 인생도 닮지 마라>는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현대, 삼성, 엘지(LG)의 창업주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의 삶을 조명한다. 젊은 시절 그들은 실패자였다. 빚을 지며 인수한 자동차 서비스 센터를 화재로 몽땅 날리거나(정주영), 땅 투기에 나섰다가 중일전쟁으로 한순간에 몰락한다(이병철). 포목점을 열었다가 고향집 땅문서에 손을 댄(구인회) 일화는 이들의 수많은 실패 앞에서 소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해방과 전쟁의 격변기 속에서 40대까지 좌절과 실패의 쓴잔을 마시면서도 국내 굴지의 기업을 키워낸 그들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지은이는 이들의 삶을 되짚어가며 기회와 성공의 본질을 파고든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나를 이용만 하던 남편, 이제와 등 뒤에서 딴짓까지…”
■ “4대강 사기극에 부역한 어용학자들 심판받아야”
■ 박근혜의 ‘자택 정치’ 한달…인수위 회의 딱 1번 참석
■ “우리 가족 먹여 살리는 대들보가 사라진다니…
■ 개·고양이 죽이면 다음 표적은 어린이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각 권 1만3800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프라하의 묘지>는 2010년 10월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된 뒤 거센 비판과 논란을 불러왔다. 19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은 반유대주의 문서를 위조한 인물 시모네 시모니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로 알려진 문제의 문서는 인류를 고통에 빠뜨려 온 온갖 문제의 배후에 유대인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을 퍼뜨리는 데에 기여했다. 1921년 <런던 타임스>에 의해 허위임이 밝혀졌음에도 이 문서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의 근거로 동원되는 등 만만찮은 해악을 끼쳐 왔다. ‘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신조로 삼는 시모니니가 19세기 유럽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이 괴문서를 비롯해 온갖 종류의 증오범죄 및 음모날조에 종사해 온 이력을 그 자신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것이 이 소설의 형식이다. 비판과 논란은 주로,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순진한 독자들이 자칫 시모니니가 주창하는 반유대주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데에 집중되었다. ‘작가 후기’에서 에코는 “그(=시모니니)는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있다”고 썼는데, 그는 구미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속임수에 바탕을 둔” 이라크전쟁, 그리고 있지도 않은 공산주의자들의 체제 전복 위협을 무기 삼아 선거에서 승리했던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등을 그 사례로 들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수전 웬델 지음
강진영·김은정·황지성 옮김
그린비·2만원 어느날 갑자기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된다면? 보이지 않게 된다면?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우리는 불안에 휩싸인다. 굳이 사고가 아니더라도, 노화만으로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 된다.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 젊었을 때 당연히 하던 일들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젊음과 건강함을 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 몸은 사회로부터 ‘거부당할’ 가능성에 늘 노출돼 있다. 30년 가까이 뇌척수염을 앓아온 여성주의 철학자 수전 웬델은, 장애는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 구조와 인식의 변화로는 보상될 수 없는 몸의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장애와 질병을 지닌 사람들 또한 ‘정상적인 삶’의 범주에 넣고, 이들의 고통과 경험을 적극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죽음과 장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시각을 연장시켜, 낙태·안락사 등엔 ‘장애인의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전제가 숨겨져 있음을 간파한다. 이는 장애인들의 복지와 안정을 위해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웬델은 이런 맥락에서 돌봄 노동의 재평가가 필요할 뿐 아니라 여기에 장애 여성의 입장을 반영함으로써 기존 여성주의 윤리학의 도덕적 전망을 넓힐 수 있다고 강조한다. 출판사 그린비가 기획한 ‘장애학 컬렉션’의 두번째 저작.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임병철 지음
푸른역사·2만5000원 르네상스가 ‘문예부흥이며, 위대한 개인의 탄생’이었다는 통념은 19세기 문화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1818~1897)의 해석에서 기원했지만, 20세기 탈근대주의자들의 십자포화를 맞는다. 시대와 사회, 역사를 초월한 자율적 영혼, 곧 ‘개인’이 14~16세기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문화에서 처음 발견된다는 그의 견해는 근대 엘리트 남성의 낭만적 시각에 불과하다는 비판이었다. 르네상스 지성사를 연구해온 임병철 신라대 교수의 <자아와 타자를 찾아서>는 이런 통념과 비판의 틈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당대 인간과 타자에 대한 관념의 변화상을 추적한다. 단테, 페트라르카, 알베르티 등 14~16세기 활동한 이탈리아의 지식인, 상인, 여행가 등이 남긴 저서와 서간 등에 대한 독해를 바탕 삼아, 지은이는 당대인들에게서 개인 아닌 ‘자아’를 끄집어낸다. 그들은 자의식 충만한 개인이 아니라 중세가 해체되는 당대의 유동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행동 양식과 의미, 곧 자아의 표현을 배우처럼 연기해야 했던 사회적 존재였다는 것이다. 르네상스기가 서유럽의 정체성을 규정한 잣대라기보다 고전 전통의 계승을 둘러싸고 세계가 각축한 시대였다는 시각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대 인간들은 세계 속에서 불안하게 부유하는 자아상을 지니고 있었기에, 모두가 균질하지 않은 존재였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정혁준 지음
다산북스·1만5000원 긴 앞머리에 뒤통수는 대머리. 고대 그리스 조각가 리시포스가 만든 카이로스의 모습이다. 그는 제우스의 아들로 ‘기회’의 신이다. 기회는 앞에 두면 잡을 수 있지만, 한번 지나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 리시포스가 카이로스의 앞머리를 무성하게, 뒤통수를 대머리로 만든 건 이런 이유에서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연작으로 집필중인 <경영의 신>은 바로 이 기회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한국, 일본, 미국의 1세대 기업 창업주들. 그 첫번째 편인 <경영의 신1-누구의 인생도 닮지 마라>는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현대, 삼성, 엘지(LG)의 창업주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의 삶을 조명한다. 젊은 시절 그들은 실패자였다. 빚을 지며 인수한 자동차 서비스 센터를 화재로 몽땅 날리거나(정주영), 땅 투기에 나섰다가 중일전쟁으로 한순간에 몰락한다(이병철). 포목점을 열었다가 고향집 땅문서에 손을 댄(구인회) 일화는 이들의 수많은 실패 앞에서 소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해방과 전쟁의 격변기 속에서 40대까지 좌절과 실패의 쓴잔을 마시면서도 국내 굴지의 기업을 키워낸 그들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지은이는 이들의 삶을 되짚어가며 기회와 성공의 본질을 파고든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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