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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희로애락 네가지 감정 스며든 집 16곳

등록 2013-02-15 20:29

마음을 품은 집
구본준 지음
서해문집·1만6000원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건축은 건축가-관료-건축주들로 이뤄진, 다리 없는 섬과 비슷했다. 단단한 불통의 벽에 소통의 구멍을 낸 것은 건축이 우리의 삶에 끼치는 심대한 영향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는 이야기꾼들이었다. 이 중에서도 얘기를 풀어가는 솜씨나 안목, 활동량에서 손꼽히는 건축 커뮤니케이터인 구본준 <한겨레> 기자가 ‘집이 들려주는 희로애락’에 대해 풀어놓았다.

희·로·애·락은 인간의 기본적인 네가지 감정이자 인간사의 모든 모습을 가리킨다. 취미로, 호기심으로, 또 취재 때문에 많은 집들을 드나들었던 지은이는 이 근본적 마음의 풍경을 담은 16곳을 뽑아냈다.

그러나 기쁨은 기쁨만으로, 슬픔은 슬픔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건축’은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고, 낡음을 내공의 장소로 부활시키며 아픔을 보듬어 치유한다. 이진아기념도서관(서울 서대문구 독립문공원)은 23살에 죽은 딸에 대한 아버지의 그리움과 슬픔으로 지어졌으나, 인왕산의 풍경과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성을 건물로 끌어들여 방문객들에게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생겨 너무 좋지만 그래도 진아양이 살고 도서관이 없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이웃 주민의 말은 ‘좋은 건축’에 보내는 찬사이기도 하다.

자칫하면 부서질 뻔했던 우리나라 1세대 대표 건축가 나상진의 귀한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탄생한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교양관 꿈마루에선 새 쓰임과 모양을 얻은 부활의 기쁨이 담겨 있고, 책읽기 캠페인에서 시작해 태어난 전남 순천 ‘기적의 도서관’엔 ‘민관공조’가 이룬 성취를 맛보는 기쁨이 있다. 둘러보다 보면 눈물이 저절로 흐르는 서울 성산동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은 청춘과 건강을 잃고도 가해자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하는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분노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옛 건물들은 드러나지 않는 은근함으로 희로애락을 전한다. 부엌·마루·방만으로 이뤄진 ‘양용삼간’엔 달과 바람을 객으로 초대하는 여유(경북 봉화 닭실마을 충재)가 넘치고, 커다란 연못가에 세워진 아름다운 정자엔 ‘살아 움직이는 물’처럼 뜻 맞는 이들이 자꾸 오면 좋겠다는 소망(강원도 강릉 선교장 활래정)이 담겨 있다. 일부러 북향을 택한 대구 달성군 도동서원엔 이 서원이 기리는 성리학자 ‘김굉필’의 고집이 서려 있다.

그렇다면 좋은 건축가는 어떤 사람일까? 이 책의 말미에 답이 나와 있다. 지은이는 마지막 장에서 영국의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의 사무실 운영 규칙을 소개하고 있다. “최고 디렉터의 급여는 가장 적은 급여를 받는 건축가의 6배까지만 받을 수 있고 회장은 9배까지만 받는다. 군대와 관련된 것, 파괴나 전쟁을 추구하는 건축 설계는 하지 않는다. 회사 지분은 대표 건축가들이 아니라 자선단체들이 소유한다.”

로저스는 이런 규정을 ‘헌법’으로 부른다. 그 이유는 자신의 회사 직원 모두가 “각자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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