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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3월 2일 잠깐독서

등록 2013-03-01 20:01수정 2015-10-23 14:34

‘더러운 전쟁’이 낳은 체첸의 비극

더러운 전쟁

안나 폴릿콥스카야 지음 주형일 옮김

이후·1만6000원

아마도 체첸이라는 지명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체첸은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1994년과 1999년 치열한 분쟁을 겪은 지역이다. 왼쪽으로는 흑해, 오른쪽으로는 카스피해를 낀 캅카스 지역에 있다.

<더러운 전쟁>은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탐사보도팀 기자인 안나 폴릿콥스카야가 1999년 8월부터 2000년 4월까지 체첸 분쟁 현장을 취재해 써내려간 기사의 일부를 모은 책이다. 우리와 별다른 관계가 없는 지구 반대편에서, 10년도 더 지난 과거에 벌어진 사건들을 담은 기사들을 왜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공감 능력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책에는 2차 체첸 분쟁 과정에서 죽고, 다치고, 고통받은 인간들의 사연이 빼곡히 담겨 있다. 옮긴이가 썼듯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어머니의 잘린 다리를 쉬지 않고 긁어대는 여섯살 딸, 조각난 아비의 주검을 수습하며 울부짖는 소녀, 부인과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넋이 나간 아비” 등의 사연을 읽다 보면, 그저 모든 것이 하얗게 증발되어 버리는 먹먹한 아픔을 느끼게 된다.

그랬던 그의 기사들이 불편했던 것일까. 폴릿콥스카야는 2006년 10월7일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가슴에 두발, 어깨에 한발, 머리에 한발의 총알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유럽 문명의 용광로’ 지중해 역사 항해

위대한 바다

데이비드 아불라피아 지음, 이순호 옮김

책과 함께·4만8000원

15세기 대서양 항로 개척 전까지 지중해는 ‘세계의 바다’였다. 고대부터 세계 교역과 정치를 움직였던 유럽과 중근동, 북아프리카의 제국, 민족들은 호수 같은 지중해를 에워싸고서 교역과 이산, 전쟁을 되풀이했다. 이런 지정학적 성격 때문에 지중해권 제국과 도시들은 예외없이 민족과 인종, 문화가 뒤섞인 용광로 성격을 갖게 된다. 지중해를 온전히 자신의 통일된 강역 안에 넣었던 나라는 ‘우리의 바다’로 지중해를 불렀던 로마제국뿐이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영국의 지중해사 대가인 데이비드 아불라피아는 대작 <위대한 바다>에서 지중해를 ‘액체대륙’으로 규정한다. 이 바다의 지정학적 역동성에, 인간의 결정과 욕망이 개입하며 벌어진 지난 2만년 동안의 역사적 사건들과 민족이동, 문화 교류의 모든 것을 1000쪽 넘는 책에 풀었다. 사분오열, 통합의 연속인 지중해 역사를 책에서는 트로이 전쟁, 수에즈 운하 개통 등 역사적 대사건을 기준삼아 5시기로 분류한다. 상인, 노예, 순례자, 토호 등 인간군상들의 다기한 활동과 정치·경제적 부침에 따른 지중해의 전략적 위상 변화 등을 줌렌즈로 풀었다 조였다 하듯이 기술해 놓았다. 지은이는 특히 지중해의 다문화 도시 흥망사에 관심을 기울여, 살로니카, 알렉산드리아 등의 걸출한 국제도시들이 20세기 민족주의 대두와 인종청소 등으로 지역도시로 퇴행한 비극적 전말을 상세히 이야기한다. 그 결과 이베리아 반도 끝의 현관 지브롤터만이 지중해 도시의 다문화적 전통을 보존한 유일 도시로 남았다고 그는 말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세대 초월 사랑받는 한국 그림책 작가 29명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

김지은·이상희·최현미·한미화 지음

시공주니어·2만3000원

아직도 그림책을 ‘글자를 안 배운 어린이가 보는 책’ 정도로만 여기는가? 그림책은 온 세대가 즐기는 예술품이 된 지 오래다. 시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그림책은 다른 예술 장르가 담기 어려운 독특한 향기를 품고 수많은 독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특히 1990년대부터 본격 태동한 한국의 그림책은 2000년대 들어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은 국내 주요 그림책 작가들의 세계를 들여다본 첫 책이다. 고경숙부터 홍성찬까지 대표적인 그림책 작가 29명의 작품세계를 다뤘다. 아동문학평론가, 그림책 작가, 기자, 출판평론가 4명이 인터넷 포털 서비스에 함께 연재했던 내용을 엮었다.

국내 그림책 선구자로 꼽히는 홍성찬 작가는 우리네 옛 모습이나 풍경, 살림살이 등을 가장 정확하고 사실에 가깝게 그린 작가로 꼽힌다. 신문·잡지 삽화부터 전집류 일러스트, 단행본 그림책 작가로 60여년이나 활동해온 그는 아직 현역이다. <구름빵>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는 인형 애니메이션을 통해 독특한 입체감을 부여했으며, 박연철 작가는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에서 전위예술처럼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작가들 나름의 독특한 세계와 피땀어린 노력을 엿보다 보면, 우리 그림책이 맺어온 다채롭고 풍요로운 열매들이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최원형 기자


갈라진 남북 잇는 시인의 언어

남북주민보고서·세계의 시간

하종오 지음

도서출판b·각권 8000원

탈분단문학을 천착해온 하종오(59) 시인이 이런 주제의식을 확장한 두 권의 시집을 동시에 묶어 냈다. ‘종북’ ‘빨갱이’ 등 권력자의 말로 상기되어온 ‘분단’은 일상생활에서는 곧잘 망각된다. 하지만 “걸핏하면 북한과 남한을 동시에 생각하는”(‘산책 시간’) 시인은 구체적 삶을 살아가는 남북 주민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한다.

<남북주민보고서>는 남북 주민들이 서로 “너나들이하고 푸념하고 시시비비하고 농담하듯” 하는 탈분단의 장면을 사실적으로 ‘보고’한다. 전작 <남북상징어사전> <신북한학>과 궤를 같이하는 이 시집은 남과 북의 대위법적 변주가 특색이다. 경기도 농민/황해도 농민, 서울 지하철/평양 지하철 등의 대비로, 남북으로 갈라진 공간을 같은 시간의 삶으로 뒤섞어 버린다. <세계의 시간>의 시들은 남과 북의 시간에다 세계의 시간을 얹어 분단모순을 드러낸다. 표제작 ‘세계의 시간’을 보면, “영어 몇 마디로 뜻이 다 통하는” 쿠웨이트 공사장에서 남북 노동자는 “같은 나라말을 쓰는데도 함께 말하지 않고 이목구비가 닮았는데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 현장에는 조선족과 고려인, 한국에서 일했던 동남아 노동자들도 있다. 시는 그들의 눈으로 분단에 따른 ‘차이’를 보고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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