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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보수 경제학자! 당신들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야

등록 2013-04-19 19:58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폴 크루그먼 지음, 박세연 옮김
엘도라도·1만6000원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는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자, 국내에서도 일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칼럼니스트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기 전에 무엇보다 그가 경제학적으로는 케인스주의자,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지지자 내지 진보주의자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크루그먼 교수가 <미래를 말한다>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가 번역돼 나왔다. <미래를 말한다>에서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의 정치·경제적 보수주의가 어떻게 빈부 격차를 심화시켰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책의 저변에는 무엇보다 1년 뒤에 치러질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흐르고 있었다. 이 염원은 현실이 됐지만 그는 잠깐의 기쁨도 누릴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엄청난 경제적 재앙이 터졌기 때문이다. 이후 지금까지 크루그먼 교수는 언론과 칼럼 등을 통해 쉬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극복 해법을 제시해왔다. 이번 저서는 이 해법, 즉 케인스주의적 해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주고, 자신과 반대편에 서 있는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한 책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 연준은 양적 완화 정책을 끝내고 금리를 빨리 올려야 한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정부는 복지나 공공시설 투자 같은 재정 지출을 줄이고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한다. 빚을 빚으로 해결할 순 없다. 잘못하다 유럽 꼴 난다. 가계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빚으로 집 사고 흥청망청 소비했으니 지금 겪는 고통은 당해도 싸다.”

크루그먼은 이런 주장들을 ‘새빨간 거짓말’ 또는 ‘중대한 착각’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경기침체 국면에서 인플레이션은 생기지 않는다. 연준은 경기 회복이 명확해지기 전에 금리를 올리면 안 된다. 가장 필요한 건 정부 지출의 대폭 확대다. 민간 수요가 부족할 때 정부가 나서 수요를 늘려야 한다는 것은 ‘대공황’을 통해 얻은 명확한 역사적 교훈이다. 지금은 빚(민간부채)을 빚(공공부채)으로 해결할 때다. 유럽은 복지가 아니라 유로화 체제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가계는 이미 실업과 소득 감소, 집값 하락으로 충분한 고통을 겪고 있다. 과감한 부채조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크루그먼은 이런 해법을 확실하게 시행하면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정책들이 도입되지 못하고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소극적이거나 잘못된 행보를 보이는 것은 ‘정치적 의지’와‘지적인 명쾌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쉬운 말로 풀면 부자들이 자기 이익을 지키려고 경제학자들과 정치인, 관료들을 매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크루그먼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전자의 주장들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미국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적 정치세력과 그에 연계된 경제학자들(소위 ‘전문가들’)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루그먼은 특히 이 ‘전문가들’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데, 이들의 행태를 소설가 업턴 싱클레어의 말을 빌려 이렇게 꼬집는다. “어떤 사실을 외면해야만 월급을 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을 납득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경제민주화’ 논쟁이 한창인 우리나라 현실에도 훌륭하게 적용될 수 있는 명언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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