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동학투사 아닌 ‘인간 전봉준’ 마지막 119일

등록 2013-04-19 20:01수정 2013-04-19 20:01

원로 작가 한승원(74)
원로 작가 한승원(74)
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비채·1만2800원
원로 작가 한승원(74·사진)의 새 소설 <겨울잠, 봄꿈>은 전라도 순창 피로리에서 체포된 전봉준이 한양으로 압송되는 119일에 초점을 맞춘다.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의 막강한 화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전봉준은 피로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알면서도 사지로 걸어 들어간다. 예상했던 대로 민보군에게 붙잡혀 한양으로 향하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단 한 가지 소망밖에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사람들에게 다 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다 한울님이므로, 박해받거나 착취당하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꿈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체포되는 과정에서 다리를 다친 그는 재갈을 물리고 포승에 묶인 채 가마에 실려 한양길에 오른다. 그를 호위하는 일본군 병사들은 가는 동안 조선 백성들의 곡식을 빼앗고 닭과 돼지를 잡는 것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가마꾼이 부상을 입거나 몸살감기에라도 걸려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처단하고 가까운 마을의 장정을 새로운 가마꾼으로 징발하고는 한다. 반복적인 일과처럼 되풀이되는 그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전봉준은 고통스러워한다. 온몸에 들끓는 이와 시원하게 속을 비우지 못하는 변비 역시 그를 괴롭히지만, 정작 더 커다란 고통은 따로 있다.

남쪽 섬 출신 조선 사람이었으나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으로 신분을 바꾼 이토 겐지가 피로리에서 한양까지 행보를 함께하며 전봉준을 회유한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를 자처하는 그는 제 양아버지가 전봉준을 살려 일본으로 데려가서는 장차 조선 방략에 요긴하게 쓰려 한다는 말로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제 동학군이 소멸돼버린 조선 땅에서 장군이 해야 할 일은 아주 많아라우. 조선의 먼 앞날을 내다보고, 조선의 뜻있는 민중들을 동원해서, 대동아의 평화적인 경영을 위해 매진하는 우리 일본에 협력하는 것이어라우.”

원조 친일파라고나 할 이토는 “조선은 더러운 나라이고, 희망이 없는 나라”라며 전봉준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재촉하다가 뺨을 맞기도 하지만, 한양에 올라온 전봉준이 국문을 거쳐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에까지도 설득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이토의 회유 앞에 전봉준의 마음은 자주 흔들린다. ‘마음을 굽히고, 이토 히로부미의 뜻에 따라 살아서 일본으로 갈 것이냐, 마음을 굽히지 않고 조선의 법에 따르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그냥 목이 잘려 죽을 것이냐.’

이토 히로부미가 전봉준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목숨을 구하고자 했으며 그런 가능성 앞에 전봉준이 갈등했다는 설정은 과감한 만큼 의문의 여지를 남기기도 하는데, 작가는 “전봉준이 붙잡혔을 당시, 일본인들 가운데는 전봉준을 살려 일본으로 데려가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말로 그런 설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전봉준에 대한 일본 영사 우치다의 취조에서도 회유는 계속되거니와, 시종 흔들리던 전봉준의 마음은 일본 영사관에서 일본 기자들과 행한 회견에서 나온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최종적으로 정리된다. 힘든 상황에서도 어디까지나 대의를 좇고 기개를 지킨, 우리가 아는 전봉준의 ‘귀환’이다.

“나는 장차 참수될 것이고, 내 피는 장차 벼슬을 팔아먹는 조선 정부의 요직에 있는 벼슬아치들, 백성들에게서 탐학과 착취를 일삼음으로써 나라를 썩어 문드러지게 한 세상의 모든 탐관오리들의 가슴에 뿌려질 것이오.”

작가 한승원은 자신의 고향 장흥을 무대로 펼쳐진 동학군 최후의 항쟁을 담은 대하소설 <동학제>(1994)를 통해 동학농민전쟁을 한 차례 다룬 바 있다. 그 이야기는 이번 소설에서도 전봉준을 회유하는 이토의 입을 통해 간략하게 서술된다. 작가는 이번 소설을 구상할 때 안도현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안도현 <서울로 가는 전봉준> 첫 연)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입 함부로 놀리지 마라” 국방장관 협박 이메일
죽은 지 10시간, 심장이 뛰다?
특별히 부탁받았는데… 운명하셨습니다
MIT에서 총격 발생…1명 사망
통쾌하다, 비정규직 미스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