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겸재의 예술지침서가 된 미학
궁극의 시학
안대회 지음/문학동네·3만8000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등 서구 미학에 익숙한 이들에게 18~19세기 동아시아 문인과 예술가들을 사로잡은 독보적 시학서의 존재는 낯설다. 동양 미학의 24가지 진경을 담고 있는 <이십사시품>(시품)은 추사 김정희, 원교 이광사, 겸재 정선 등 조선 후기 정점의 예술을 꽃피웠던 이들의 지침서였다. 당나라 말 시인 사공도의 저서로 알려진 <시품>은 웅혼(영웅의 품격), 충담(선비의 담백함), 섬농(여성적 감수성), 침착(내성적 성향), 고고(높고 예스러움) 등 24개 ‘풍격’을 시로 표현한 시학서이자 비평서지만, 원문이 워낙 짧고 추상적인 탓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한문학의 깊이를 대중적으로 퍼뜨려온 지은이는 중국과 조선의 시는 물론, 그림과 산문, 서예, 인장에 이르기까지 <시품>이 영감을 제공한 작품들을 이리저리 직조했다. 지은이는 동양 미학의 정수를 설명하기 위해 서구 미학과 손을 잡는다. ‘웅혼’에는 “뭉게뭉게 먹구름은 피어나고 휘익휘익 긴 바람은 몰려온다”는 구절이 있다. 지은이는 여기에 에드먼드 버크의 “위대한 사물은 반드시 어둡고 몽롱한 것이어야 한다”는 숭고의 개념을 접목시킨다. 압도적 자연을 마주할 때 각성되는 칸트의 숭고미도 덧대어진다. 우리에게 비장·비탄·비분의 정서로 알려진 ‘비개’의 풍격은 운명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서구의 비극 개념과 맞물린다. 2011년부터 매주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연재한 글을 엮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사랑이야기에 빠진 사진과 시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
전영관 글, 탁기형 사진/푸른영토·1만4800원 사진과 문장이 서로 대화를 하는 듯하다. 수십개의 나사가 엉켜 있는 사진 사이로 글을 맡은 지은이는 ‘불안한 사랑’을 얘기한다. “온몸이 나사가 되면 아찔하게 회전할 수 있겠지. 끌어안고 절대로 풀 수 없다고 힘을 줄 수 있겠지.” 사진 속 나사는 글 속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 사진은 ‘시어’가 되고, 글은 한편의 ‘시’가 되는 셈이다. 전영관·탁기형의 공감 포토 에세이. 시인이자 대기업 건설소장의 글과 사진작가이자 신문기자의 사진이 주거니받거니 소통을 하고 있다. 책을 넘기는 순간 두 사람의 마음이 담긴 에세이 107편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에도 공식이 있는 것처럼 연애지침서가 쏟아지고, 상처를 치유해 주겠다며 힐링 프로그램이 감기약처럼 팔려 나가는 요즘. 지은이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데는 아무런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공감을 선택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침 대신, 자신들의 속마음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낸다. “나는 상처와 치유를 반복하며 견딘다. 상처란 두려움을 버리고 정면으로 응시할 때 비로소 새살을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전영관) “우주의 속도에 대거리한다 해도 찰나를 잡아낼 수 없다는 사실에 수시로 절망하고, 누군가의 웅숭깊은 표정을 통해 그 생의 이면들을 표현했다는 느낌이 올 때는 뿌듯한 저녁을 보냈다.”(탁기형)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세계를 담아내는 건축 ‘암호풀이’
빌딩블로그
제프 마노 지음, 김아연 이혜인 허대영 옮김
나무도시·2만2000원 <빌딩 블로그>에는 ‘빌딩’이 나오지 않는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최신식 고층 건물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신 지하세계, 소리, 하늘처럼 다소 추상적인 주제와 연관된 건축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치 암호를 풀듯 고생물학, 미생물학, 정치학, 군사학, 기상학, 고고학이 총동원된다. 지은이 제프 마노는 2004년 인터넷에서 문을 연 뒤 수백만명의 방문자가 다녀갔다는 ‘빌딩 블로그’의 주인장이다. 그는 ‘빌딩’을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에 대한 총체적인 상징이라고 본다. 다양한 분야의 학술적 담론을 중층적으로 얽어가며 그는 ‘말하는 건축’(파를란테 건축)이란 개념 아래 건축물이 물리적으로 재현한 메시지를 분석한다. 그가 보여주는 건축적 상상, 지하세계, 소리와 음악, 미래 경관은 ‘건축’이라기보다는 사실 사회 구조의 문제다. 예컨대 슬럼을 연구한 마이크 데이비스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 인구가 시골 인구보다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무시무시한 거대 슬럼지역을 품은 도시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풀이한다. 빈곤과 질병의 상관관계 속에서 도시는 ‘생지옥’이 될 수 있고, 많은 이들이 빈곤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구조상 도시 빈민들이 계층 상승할 수 있는 재원이 없다면 암울한 전망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건축의 문제는 어떻게 세계를 ‘빌딩’(건축)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20대, 목적지 없는 여정은 아름답더라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정여울 지음/21세기북스·1만6000원 20대를 얼마 전 헤쳐나온 문학평론가 정여울이 후배들에게 말을 건다. 우정, 여행, 사랑, 재능, 탐닉, 직업, 방황, 가족, 타인…. 젊은 시절 고민의 중심에 있을 법한 스무개의 단어를 놓고 함께 솔직히 얘기해 보자며 다가선다. 해답은 없지만, 대신 고민의 흔적을 섬세하고 진솔하게 풀어놓은 글을 건넨다. “어수룩하기 이를 데 없던 나의 20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작은 방 안에 누워서, 어슴푸레한 형광등 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진로를 결정했던 그날 밤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그 길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그저 마음을 다해 뚜벅뚜벅 걷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목적지 없는 여정은 뜻밖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곳곳에서 내 앞에 펼쳐놓는다.” “20대를 보내며 미처 끝내지 못한 사랑과 우정의 뒤풀이”라고 소개한 이 책에서 그는 “20대에 놓쳐버린 기회보다 20대에 놓쳐버린 감성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때론 눈물 흘리고 주저앉았지만, 방황 속에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세상을 배워가는 그의 모습이 용기를 준다. ‘88만원 세대’ 같은 세상이 그려놓은 틀 안에 갇히지 말 것, 오히려 “세상을 향해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삶은 바뀔 수 있다”고 그는 말해준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대한민국 ‘멘붕’시킨 사진 한장
■ 윤창중 “성추행하는 미친놈들 때문에 스트레스 팍팍” 칼럼 쓰더니…
■ 손석희, ‘시선집중’ 마지막 방송 “역할 여기까지…”
■ [화보] 윤창중 5개월…막말에서 성추문까지
■ 명계남, 민주당 지도부에 “노무현 이용말라” 고함
안대회 지음/문학동네·3만8000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등 서구 미학에 익숙한 이들에게 18~19세기 동아시아 문인과 예술가들을 사로잡은 독보적 시학서의 존재는 낯설다. 동양 미학의 24가지 진경을 담고 있는 <이십사시품>(시품)은 추사 김정희, 원교 이광사, 겸재 정선 등 조선 후기 정점의 예술을 꽃피웠던 이들의 지침서였다. 당나라 말 시인 사공도의 저서로 알려진 <시품>은 웅혼(영웅의 품격), 충담(선비의 담백함), 섬농(여성적 감수성), 침착(내성적 성향), 고고(높고 예스러움) 등 24개 ‘풍격’을 시로 표현한 시학서이자 비평서지만, 원문이 워낙 짧고 추상적인 탓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한문학의 깊이를 대중적으로 퍼뜨려온 지은이는 중국과 조선의 시는 물론, 그림과 산문, 서예, 인장에 이르기까지 <시품>이 영감을 제공한 작품들을 이리저리 직조했다. 지은이는 동양 미학의 정수를 설명하기 위해 서구 미학과 손을 잡는다. ‘웅혼’에는 “뭉게뭉게 먹구름은 피어나고 휘익휘익 긴 바람은 몰려온다”는 구절이 있다. 지은이는 여기에 에드먼드 버크의 “위대한 사물은 반드시 어둡고 몽롱한 것이어야 한다”는 숭고의 개념을 접목시킨다. 압도적 자연을 마주할 때 각성되는 칸트의 숭고미도 덧대어진다. 우리에게 비장·비탄·비분의 정서로 알려진 ‘비개’의 풍격은 운명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서구의 비극 개념과 맞물린다. 2011년부터 매주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연재한 글을 엮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전영관 글, 탁기형 사진/푸른영토·1만4800원 사진과 문장이 서로 대화를 하는 듯하다. 수십개의 나사가 엉켜 있는 사진 사이로 글을 맡은 지은이는 ‘불안한 사랑’을 얘기한다. “온몸이 나사가 되면 아찔하게 회전할 수 있겠지. 끌어안고 절대로 풀 수 없다고 힘을 줄 수 있겠지.” 사진 속 나사는 글 속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 사진은 ‘시어’가 되고, 글은 한편의 ‘시’가 되는 셈이다. 전영관·탁기형의 공감 포토 에세이. 시인이자 대기업 건설소장의 글과 사진작가이자 신문기자의 사진이 주거니받거니 소통을 하고 있다. 책을 넘기는 순간 두 사람의 마음이 담긴 에세이 107편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에도 공식이 있는 것처럼 연애지침서가 쏟아지고, 상처를 치유해 주겠다며 힐링 프로그램이 감기약처럼 팔려 나가는 요즘. 지은이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데는 아무런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공감을 선택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침 대신, 자신들의 속마음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낸다. “나는 상처와 치유를 반복하며 견딘다. 상처란 두려움을 버리고 정면으로 응시할 때 비로소 새살을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전영관) “우주의 속도에 대거리한다 해도 찰나를 잡아낼 수 없다는 사실에 수시로 절망하고, 누군가의 웅숭깊은 표정을 통해 그 생의 이면들을 표현했다는 느낌이 올 때는 뿌듯한 저녁을 보냈다.”(탁기형)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제프 마노 지음, 김아연 이혜인 허대영 옮김
나무도시·2만2000원 <빌딩 블로그>에는 ‘빌딩’이 나오지 않는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최신식 고층 건물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신 지하세계, 소리, 하늘처럼 다소 추상적인 주제와 연관된 건축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치 암호를 풀듯 고생물학, 미생물학, 정치학, 군사학, 기상학, 고고학이 총동원된다. 지은이 제프 마노는 2004년 인터넷에서 문을 연 뒤 수백만명의 방문자가 다녀갔다는 ‘빌딩 블로그’의 주인장이다. 그는 ‘빌딩’을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에 대한 총체적인 상징이라고 본다. 다양한 분야의 학술적 담론을 중층적으로 얽어가며 그는 ‘말하는 건축’(파를란테 건축)이란 개념 아래 건축물이 물리적으로 재현한 메시지를 분석한다. 그가 보여주는 건축적 상상, 지하세계, 소리와 음악, 미래 경관은 ‘건축’이라기보다는 사실 사회 구조의 문제다. 예컨대 슬럼을 연구한 마이크 데이비스와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 인구가 시골 인구보다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무시무시한 거대 슬럼지역을 품은 도시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풀이한다. 빈곤과 질병의 상관관계 속에서 도시는 ‘생지옥’이 될 수 있고, 많은 이들이 빈곤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구조상 도시 빈민들이 계층 상승할 수 있는 재원이 없다면 암울한 전망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건축의 문제는 어떻게 세계를 ‘빌딩’(건축)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정여울 지음/21세기북스·1만6000원 20대를 얼마 전 헤쳐나온 문학평론가 정여울이 후배들에게 말을 건다. 우정, 여행, 사랑, 재능, 탐닉, 직업, 방황, 가족, 타인…. 젊은 시절 고민의 중심에 있을 법한 스무개의 단어를 놓고 함께 솔직히 얘기해 보자며 다가선다. 해답은 없지만, 대신 고민의 흔적을 섬세하고 진솔하게 풀어놓은 글을 건넨다. “어수룩하기 이를 데 없던 나의 20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작은 방 안에 누워서, 어슴푸레한 형광등 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진로를 결정했던 그날 밤의 두근거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그 길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그저 마음을 다해 뚜벅뚜벅 걷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목적지 없는 여정은 뜻밖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곳곳에서 내 앞에 펼쳐놓는다.” “20대를 보내며 미처 끝내지 못한 사랑과 우정의 뒤풀이”라고 소개한 이 책에서 그는 “20대에 놓쳐버린 기회보다 20대에 놓쳐버린 감성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때론 눈물 흘리고 주저앉았지만, 방황 속에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세상을 배워가는 그의 모습이 용기를 준다. ‘88만원 세대’ 같은 세상이 그려놓은 틀 안에 갇히지 말 것, 오히려 “세상을 향해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삶은 바뀔 수 있다”고 그는 말해준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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