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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근대 과학주의가 빚어낸 자아 분열…예술에서 구원을

등록 2013-06-09 19:57수정 2013-06-11 16:25

이순예(이화여대 강사·미학)
이순예(이화여대 강사·미학)
‘예술과 비판…’ 펴낸 철학자 이순예씨
아도르노 연구자 이순예(이화여대 강사·미학·사진)씨가 쓴 <예술과 비판, 근원의 빛>(한길사)은 ‘예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다.

그는 대학(서울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뒤 독일로 건너가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의 문명 비판적 시각을 발판 삼아 이마누엘 칸트(1724~1804)의 <판단력 비판> 이래 독일의 ‘철학적 미학’의 발전 과정을 분석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순예씨는 이 책에서 박사논문의 주제 의식을 발전시켜,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세계체제화한 자본주의를 ‘후기’ 자본주의라고 규정짓고, 이 체계를 떠받쳐온 근대 과학주의, 곧 대상을 도구로만 보는 ‘도구적 이성’에 바탕한 근대 합리주의는 이제 인간을 행복해지도록 구원하기는커녕 인간의 자아를 분열시키는 ‘낡은 패러다임’이 되었다고 말한다. 아도르노가 말한 ‘도구적 이성’의 지배로 말미암아 현대인은 근대적 진보가 가져다준 물질적 조건을 향유하기보다는 문명의 피로감에 가득한 삶을 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는 예술의 역할에 주목한다.

주체가 대상보다 우위인 시대
현대인 삶은 문명피로에 젖어
대상 앞에 겸허한 예술이야말로
주체의 자율성 회복 계기

6일 서울 이화여대 교정에서 만난 그는 근대 합리주의를 반성적으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칸트에게서 비롯된 서구 계몽의 패러다임인 ‘비판문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비판’이란 권력과 주체의 관계에서 권력에 대한 주체의 자율성을 형성하기 위한 상대화하는 과정”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권력에 대해 자율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예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인식하는 주체(나)가 대상에 대해 우위인 시대입니다. 근대 과학주의는 내가 모든 사물을 처리·분석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술은 대상을 앞에 두고 겸허해지는 것입니다. 정말 미적으로 제대로 구축된 대상이 오면, 인간은 겸허해집니다. 예술이 빛을 발하는 이유입니다. 분석하는 주체는 자신을 우위에 놓기 때문에 대상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분석 자체가 폭력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예술에서만큼은 내가 예술을 대상으로 삼지 못해요. 대상(예술)이 워낙 빛나기 때문에 그 예술성 앞에서 내가 겸허해지는 겁니다.”

그는 18세기 이래 인간 사회를 규율해온 ‘근대성’의 ‘원형’을 칸트로 거슬러 올라가 거듭 숙고해야 하며, 이를 통해서 인간은 재계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때로는 내가 대상(예술) 앞에서 겸허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상에 대해서 겸허해져야 한다, 이런 생각이 칸트의 <판단력 비판>의 핵심입니다. 독재를 무너뜨리는 것 못지않게 나를 민주주의 시민으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칸트가 오늘에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그는 책에서 칸트의 1784년 논문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중요하게 분석하고 있는데, 계몽의 용기를 역설하는 문장으로 시작되어 당시 군주인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복종하라’는 말로 끝나는 이 논문은 오늘날까지 칸트가 계몽의 대상과 주체를 두고 일관되지 못한 논지를 폈다는 논쟁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이씨는 “한마디로 자유는 바라면서도 혼란은 막고 싶은 철학자의 생각”이라고 말한다. 곧, 이성의 공적 사용과 사적 사용을 ‘구분하라’는 칸트의 주장은, 미셸 푸코가 해석한 대로, 권력과 자본의 지배를 받는 공적 관계에 너의 인식을 모두 넘겨주지 말라는 명령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프리드리히 대왕 치하 계몽 절대주의 체제에서 인간이 생존권과 자유를 유지할 방도를 고민했던 것이고, 우리는 그 지점에서 최초의 근대적인 생존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칸트가 제기한 영역 구분의 요청을 푸코는 지배받지 않으려는 비판의 태도가 발현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씨는 근대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 속에 제기돼온 탈근대 담론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탈근대 담론은 “개별성을 발판으로 근대 과학주의를 극복하겠다고 나섰다가 개인의 의지에 발목이 잡힌 채 결국 체계의 확대재생산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탈근대 담론은 개별성, 감성을 들고나왔는데, 이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전체 사회를 시스템화하는 데 개인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답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차이를 중요시하면서 차이만 이야기했습니다. ‘가’와 ‘나’가 다르다면, 그 둘이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둘이 인간이라는 공통성을 탐구해야 합니다. 탈근대 담론은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 방식으로는 차이가 계속 강화되죠. 차이와 차별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차별을 없애는 것,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는 ‘사회 구성’(체계·질서)과 ‘개인의 행복’ 사이의 긴장관계는 주체가 자기가 사는 사회에서 자기를 상대화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기에 어려서부터 예술 교육을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 체계란 게 민주주의 사회에선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서 분열이 일어납니다. 그 분열을 사회적 역할 속에서 떠안고 가면서도, 나를 세련화하면서 순간순간이나마 내가 행복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 계기로서 위대한 예술이 주변에 있어야 합니다.”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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