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으로 충분하다
정혜신 지음/푸른숲·1만3800원
정혜신 지음/푸른숲·1만3800원
‘힐링’이 소비의 대세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니 한번쯤 자신을 치유해보려 책을 읽거나 상담을 받거나 이런저런 활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힘든 세상이다. 지난 24년 동안 1만2000명이 넘는 사람을 상담해온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작정하고 ‘치유자의 영업비밀’을 공개하는 책을 쓰려고 상담 희망자를 모집했을 때 몰려온 이들도 대게 나름의 ‘힐링 경력’이 있는 이들이었다.
신청자 중 가장 평균적인 모습을 한 30대 여성 4명을 뽑았다. 정혜신 전문의는 그들과 1주일에 두시간씩 6주 동안 집단 상담을 했다. 힐링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그걸 온전히 드러내기 힘든 마음, 그 둘이 합쳐져 고통이 만들어졌다. 어설픈 ‘자기 분석’ 시도는 관계를 더 엉키게 만들기도 했다. 이번 ‘치유 여행’의 규칙은 하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다. 치유자의 입장에서 상담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정리했으니 ‘영업비밀’의 공개 수위가 높다.
디자인 회사를 경영하는 황지혜씨는 ‘쿨한 여자’라는 주변 시선에 갇혀 산다. 사실은 옷에 국물만 흘려도 쩔쩔매는 스타일인데 아무도 몰라준다. 황씨는 ‘쿨함’으로 위장하기 위해 감정을 억제한다. 어떤 감정이 올라올 기미가 느껴지면 예민한 센서가 곧바로 차단막을 내린다. 자기 스스로를 ‘엘리트’라 칭하는 양미란씨는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정혜신 전문의가 “그런 얘기 말고 자기 느낌을 말해보라”고 하니 말문이 막혀 눈물을 흘린다. 황씨와 양씨 모두에게서 ‘주지화’가 나타난다. 자신의 감정보다는 사실만을 늘어놓으며 감정 표현을 회피한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엄한 언니와 지내온 중학교 교사 김해인씨는 불편할 때면 오히려 웃는다. 언니는 병적으로 어린 동생에게 화풀이와 잔소리를 해댔지만 김씨는 그런 언니를 감싼다. 막강한 심리적 권력자인 부모(김씨의 경우에는 부모 역할을 한 언니)와의 관계에서 부모의 폭력적인 행동, 병든 가치관,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비뚤어진 논리까지도 자식에게는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신발장이 왜 저렇게 어지럽냐”면서 인상을 쓰는 무뚝뚝하고 엄하기만 한 아빠를 둔 신미수씨는 “아빠와 있을 땐 숨도 눈치 봐가면서 쉬는 느낌”이었다 했다. 정혜신 전문의는 존재하는 고통을 인정하라고 조언한다.
사람은 욕먹었을 때보다도 자신의 속내를 말했는데 상대가 그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것 같지 않을 때 더 깊이 상처받는다고 책은 말한다. 타인에게 공감을 받았다는 것은 내가 그런 감정을 가져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받는 행위다. 그 순간 사람은 깊은 위로와 함께 근원적인 안정감을 얻게 된다. 그러면 편해지고 너그러워진다. 다른 이의 치유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위안받을 수 있다니 책을 덮을 때쯤엔 좀더 편해질 수도 있겠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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