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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사람] 남편이 남긴 책 2만여권으로 도서관 짓고 싶다

등록 2013-06-17 19:40수정 2013-06-18 09:33

‘남편의 서가’ 펴낸 고 최성일 평론가 아내 신순옥씨
한때 시인 꿈꿨던 국문학도
남편 서재서 책 31권 골라
출판잡지에 연재 서평 모아
“여보, 나 잘하고 있어”
‘책상 서랍이 잘 닫히지 않아 틈새에 끼인 물건들을 꺼내놓고 보니 먼지 묻은 크리스마스카드가 나왔다. “고통을 준 것도 모자라 뒤치다꺼리만 하게 하여 용서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발신인은 ‘못돼먹은 남편’이다. 2009년 12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남긴 것인데 마지막 서신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아 잊고 있었다. 슬픔은 불쑥불쑥 찾아들었다.’

2011년 7월 남편인 출판평론가 최성일씨를 뇌종양으로 떠나보낸 뒤 아내 신순옥(42·사진)씨의 일상은 잘 닫히지 않는 서랍 같아졌다. 뭘 해도 집중이 되지 않았고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두 아이 앞에서 ‘아빠’란 말조차 꺼내기도 힘겨웠다. 집안을 휘감고 있는 2만여권의 책을 보며 망설였다. 남편의 손때가 묻은 책을 버리기도, 버리지 않기도 어려웠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의 전화는 뜻밖이었다. 그해가 다 갈 무렵 한 소장은 그에게 “글을 쓰라”고 했다. 국어국문학 석사까지 마치고 시인을 꿈꿨던 신씨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 전업주부로 살았다. 종종 그에게 글쓰기를 독려했던 남편은 한 소장에게 “아내가 글 좀 쓴다”는 말을 비치곤 했다고 한다. 남편이 준 기회라 생각하고 그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출판잡지 <기획회의>에 연재한 서평이 31편으로 묶여 최근 독서에세이 <남편의 서가>(북바이북 펴냄)로 나왔다. 제목 그대로 남편의 서재를 서성이며 써내려간 글이다. 상실과 애도에 관한 심리학 책 <애도> 속 여인의 초상이 자신의 모습 같아 울기도 했고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를 읽다가는 남편이 써놓은 “아이를 순산해 모유로 키우는 집사람이 대견스럽고 고맙다”는 서평에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격주로 마감을 하며 2주간의 시간을 온전히 책을 고르고 읽고 쓰는 데 썼다. 치유의 시간이었다.

신씨와의 인터뷰는 전화로 진행됐다. 애초에는 만나기로 했는데 그날 아침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급성장염으로 응급실에 가게 됐다. 딸을 돌보다 10살 아들을 챙기러 잠시 집에 들렀다는 전화기 너머 그는 “아이가 아프니 남편의 부재를 더 깊이 느끼게 된다”고 했다. 먼지 묻은 상실감은 자꾸 튀어나온다.

죽은 엄마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하는 집안에서 사는 소녀의 이야기인 <미라가 된 고양이>를 읽고 비로소 신씨는 아이들에게 “아빠한테 편지를 쓰자”고 했다. 딸아이는 아빠에게 바람이라도 되어 찾아와달라 했다. 그러더니 얼마 뒤 “샤워할 때 찾아오면 부끄러우므로” 그 부탁을 철회했다. 벌써 사춘기가 오나 보다. 아이들이 커간다.

신씨는 <한겨레> 지면을 통해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나 잘하고 있어요.” 언젠가 남편의 책으로 도서관을 만들고도 싶다. 앞으로 오래 글을 쓸 생각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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