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는 문학평론가 황현산(사진·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의 첫 산문집이다. 그의 본령이라 할 문학비평과 불문학 연구에 해당하는 글들은 별도의 책으로 나와 있으며, 이 책에 실린 글은 대부분 <한겨레>와 <국민일보>에 쓴 칼럼들이다.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낭만주의 이후 문학, 특히 시는 이 밤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다.”
책의 제목을 낳은 이 대목에서 지은이는 이성과 규범의 시간인 낮에 비해 감성과 상상력의 시간인 밤을 한껏 추어올린다. ‘저녁형 인간’을 넘어 ‘올빼미’를 자처하는 그의 체질과 습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시를 포함한 문학이 낮보다는 밤에 더 가깝다는 역사적이며 본질적인 판단이 그로 하여금 낮이 아닌 밤의 손을 들게 했을 터. 인용한 대목이 포함된 글의 제목 ‘낮에 잃은 것을 밤에 되찾는다’가 말해주듯, 낮이 상처와 상실의 시간이라면 밤은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이 하는 일이 바로 그와 같은 밤의 일이다.
황현산의 칼럼들은 이런 생각을 사회 전반으로 확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두가 불행한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유신 시대를 회고할 때도,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5월 광주라는 거대 범죄로부터 시작한 80년대를 떠올릴 때에도, ‘바르게 살자’는 위압적인 구호로 도로 한복판에 버티고선 어느 단체의 돌덩이에서 공포와 절망을 느낄 때에도 그를 이끄는 것은 밤과 시의 효능에 대한 믿음과 그리움이다.
문학비평에서도 그러하지만 황현산 산문의 커다란 미덕은 정확하면서도 유려한 문체에 있다. 자신의 관찰과 판단을 글로 옮길 때 그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까다로운 논리의 곡예를 펼치지 않는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어휘와 문장으로 번뜩이는 통찰을 내보이는 데에서 그는 독보적이다. 이런 식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불투명한 것들이 투명한 것의 힘을 만든다. 인간의 미래는 여전히 저 불투명한 것들과 그것들의 근거지인 은밀한 시간에 달려 있다.”
글 최재봉 기자, 사진 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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