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기사 잘 쓴 기자 마르크스
런던 특파원 칼 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1만8000원 <공산당선언>, <자본론> 등을 통해 20세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였던 카를 마르크스(1818~83)는 유능한 기자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경제학자, 철학자, 정치이론가로 널리 알려졌을 뿐, 저널리스트 마르크스에 대한 평가는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독일 몇몇 언론사를 거쳐 1852년부터 1862년까지 10년 동안 미국의 진보적 일간신문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350건의 기사를 쓰는 등 언론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이 매체는 당시 발행부수 20여만부의 세계 최대 신문이었다. 당시 여행 제한으로 영국에 발이 묶여 있던 마르크스는 런던의 영국도서관에서 유럽 각국의 신문을 섭렵하며 미국 독자들이 접할 수 없었던 유럽의 소식들을 알렸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특파원 코너’쯤 된다. 마르크스는 사건을 단순히 전달하기보다 사회·경제·역사적 배경을 분석하고, 정치인과 정부의 발언이나 조처 뒤에 깔린 진짜 동기를 찾으려 애썼다. 마르크스의 기사는 ‘유럽 정치의 주요 사안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주는 글’이라는 평가도 들었다. 미국 언론인 제임스 레드베터는 “<뉴욕 데일리 트리뷴> 런던 통신원 생활이 마르크스의 사상적 발전에 지대한 구실을 했다.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를 기자로서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그 신문에 실렸던 37건의 기사가 담겼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프랑스 약탈 의궤 반환 뒤에 두 여성이 있었다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유복렬 지음
눌와·1만3000원 2011년 4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약탈당한 조선 의궤 297권이 145년 만에 돌아왔다. ‘5년 단위로 갱신되는 대여’ 형식이긴 하지만 사실상의 반환이다. 책은 희망과 좌절, 영욕이 뒤엉킨 20여년의 반환협상 과정 실무를 맡았던 일선 외교관의 회고담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프랑스어 통역을 전담하기도 했던, 당시 파리 주재 대사관 정무참사관 유복렬(현 애틀랜타 총영사관 근무)씨가 그 주인공. 병인양요 100여년 뒤인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씨가 발견한 의궤의 반환협상은 한국 고속철도사업에 자국산 테제베(TGV)를 팔기 위해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한 1993년부터 시작됐다. 한국은 의궤들이 불법적인 ‘전시 약탈문화재’니 무조건 반환하라고 요구했고, 프랑스는 자국인 신부 9명이 처형당한 병인양요 발생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며 맞섰다. 프랑스는 ‘문화재 불가양’ 원칙을 규정한 자국 법을 앞세우며, 꼭같은 질과 양의 한국 문화재들과 맞교환 대여하는 ‘등가등량 교환’을 고집했다. 의궤 반환이 선례가 돼 자국 박물관이 텅텅 비게 될 사태를 프랑스는 우려했다. 자신의 체험담을 곁들인 유씨의 이야기는 출구가 없어 보이던 협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극적으로 타결되는지, 일선 실무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얘기들을 구사하며 흥미롭게 보여준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기록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안병직 번역·해제
이숲·2만5000원 지난 14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제1087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하지만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1991년 이후에도, 조선인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일본군 내부에서 작성된 사료는 거의 없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진술과 신문·잡지 등에 기록된 2차 사료에 의존했다.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는 일제 강점기 싱가포르와 버마에서 2년5개월 동안 일본군 위안소에서 관리자로 일한 조선인의 일기다. 당시 일본 군부가 조선인 위안부를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위안소 운영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1차 사료다. 1943년 1월1일부터 1944년 12월31일까지 일기를 번역·해제한 이 책에는 위안소 경영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나온다. 1943년 7월26일 일기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치후지루의 위안부를 데리고 신체검사와 예방접종을 하고 돌아왔다”고 하고, 다음달 26일에는 “병참사령부에 가서 5일간의 일보를 제출하고 콘돔 800개를 받아왔다”고 적혀 있다. 일본군 사령부가 영업을 관리하고, 위안부의 성병검사와 피임기구 배급도 맡았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물적 증거가 없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 자료는 일본 군부가 군 위안부를 동원·관리·통제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기록
에라스뮈스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1만8000원 유럽의 15~16세기는 위대한 인문주의자들을 길러낸 시기인 동시에 종교개혁의 혼란이 불타오르던 때였다. 이 책은 이 시대를 수직으로 살아낸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1466~1536)의 평전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에라스뮈스는 인생 대부분을 가난과 싸우면서도 영국·프랑스·스위스 등 전 유럽을 돌며 토머스 모어 등 동시대 학자들과 교류했다. 풍부한 인문학적 사유로 종교개혁에 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에라스뮈스가 종교개혁의 알을 낳았고 마르틴 루터가 이를 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루터 식의 종교개혁엔 반대했고 신교·구교 갈등을 중재하려 애썼다. 풍자와 해학으로 이름난 저작 <우신예찬>엔 그가 평생 간직해온 자유정신의 요체가 담겨 있다.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스툴티티아는 황금의 신(플루투스)과 ‘젊음’이라는 님프 사이에서 태어난 어리석음의 여신(우신)이지만, 자부심만은 지혜의 여신(미네르바)을 능가한다. “내가 없다면 이 세상은 단 한순간도 존재하지 못한다”, “오로지 현명한 통찰로만 대처하려 드는 사람은 인생의 즐거움을 스스로 빼앗아 버리는 자이다”, “어리석음만이 인생의 치료약이다.” 아마도, 인간의 본질을 유희의 관점에서 파악한 ‘호모 루덴스’ 개념을 주창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창조적인 ‘세계시민’ 에라스뮈스의 삶을 쓰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현대차 사과에도 ‘수(水)타페’ 차주들이 분노하는 이유
■ ‘돈 먹는 하마’ 최첨단 스텔스기, 야망의 추락
■ 누드모델 하영은 “벗으면 그 사람의 삶이 보여요”
■ [화보] 국민 우롱한 원세훈·김용판 청문회 ‘촛불’에 기름을 붓다
■ [화보] 김용판의 야릇한 표정, 원세훈은…
카를 마르크스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1만8000원 <공산당선언>, <자본론> 등을 통해 20세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였던 카를 마르크스(1818~83)는 유능한 기자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경제학자, 철학자, 정치이론가로 널리 알려졌을 뿐, 저널리스트 마르크스에 대한 평가는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독일 몇몇 언론사를 거쳐 1852년부터 1862년까지 10년 동안 미국의 진보적 일간신문 <뉴욕 데일리 트리뷴>에 350건의 기사를 쓰는 등 언론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이 매체는 당시 발행부수 20여만부의 세계 최대 신문이었다. 당시 여행 제한으로 영국에 발이 묶여 있던 마르크스는 런던의 영국도서관에서 유럽 각국의 신문을 섭렵하며 미국 독자들이 접할 수 없었던 유럽의 소식들을 알렸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특파원 코너’쯤 된다. 마르크스는 사건을 단순히 전달하기보다 사회·경제·역사적 배경을 분석하고, 정치인과 정부의 발언이나 조처 뒤에 깔린 진짜 동기를 찾으려 애썼다. 마르크스의 기사는 ‘유럽 정치의 주요 사안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주는 글’이라는 평가도 들었다. 미국 언론인 제임스 레드베터는 “<뉴욕 데일리 트리뷴> 런던 통신원 생활이 마르크스의 사상적 발전에 지대한 구실을 했다.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를 기자로서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그 신문에 실렸던 37건의 기사가 담겼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유복렬 지음
눌와·1만3000원 2011년 4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약탈당한 조선 의궤 297권이 145년 만에 돌아왔다. ‘5년 단위로 갱신되는 대여’ 형식이긴 하지만 사실상의 반환이다. 책은 희망과 좌절, 영욕이 뒤엉킨 20여년의 반환협상 과정 실무를 맡았던 일선 외교관의 회고담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프랑스어 통역을 전담하기도 했던, 당시 파리 주재 대사관 정무참사관 유복렬(현 애틀랜타 총영사관 근무)씨가 그 주인공. 병인양요 100여년 뒤인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씨가 발견한 의궤의 반환협상은 한국 고속철도사업에 자국산 테제베(TGV)를 팔기 위해 미테랑 대통령이 방한한 1993년부터 시작됐다. 한국은 의궤들이 불법적인 ‘전시 약탈문화재’니 무조건 반환하라고 요구했고, 프랑스는 자국인 신부 9명이 처형당한 병인양요 발생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며 맞섰다. 프랑스는 ‘문화재 불가양’ 원칙을 규정한 자국 법을 앞세우며, 꼭같은 질과 양의 한국 문화재들과 맞교환 대여하는 ‘등가등량 교환’을 고집했다. 의궤 반환이 선례가 돼 자국 박물관이 텅텅 비게 될 사태를 프랑스는 우려했다. 자신의 체험담을 곁들인 유씨의 이야기는 출구가 없어 보이던 협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극적으로 타결되는지, 일선 실무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얘기들을 구사하며 흥미롭게 보여준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안병직 번역·해제
이숲·2만5000원 지난 14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제1087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하지만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1991년 이후에도, 조선인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일본군 내부에서 작성된 사료는 거의 없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진술과 신문·잡지 등에 기록된 2차 사료에 의존했다.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는 일제 강점기 싱가포르와 버마에서 2년5개월 동안 일본군 위안소에서 관리자로 일한 조선인의 일기다. 당시 일본 군부가 조선인 위안부를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위안소 운영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1차 사료다. 1943년 1월1일부터 1944년 12월31일까지 일기를 번역·해제한 이 책에는 위안소 경영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나온다. 1943년 7월26일 일기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치후지루의 위안부를 데리고 신체검사와 예방접종을 하고 돌아왔다”고 하고, 다음달 26일에는 “병참사령부에 가서 5일간의 일보를 제출하고 콘돔 800개를 받아왔다”고 적혀 있다. 일본군 사령부가 영업을 관리하고, 위안부의 성병검사와 피임기구 배급도 맡았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물적 증거가 없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 자료는 일본 군부가 군 위안부를 동원·관리·통제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1만8000원 유럽의 15~16세기는 위대한 인문주의자들을 길러낸 시기인 동시에 종교개혁의 혼란이 불타오르던 때였다. 이 책은 이 시대를 수직으로 살아낸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1466~1536)의 평전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에라스뮈스는 인생 대부분을 가난과 싸우면서도 영국·프랑스·스위스 등 전 유럽을 돌며 토머스 모어 등 동시대 학자들과 교류했다. 풍부한 인문학적 사유로 종교개혁에 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에라스뮈스가 종교개혁의 알을 낳았고 마르틴 루터가 이를 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루터 식의 종교개혁엔 반대했고 신교·구교 갈등을 중재하려 애썼다. 풍자와 해학으로 이름난 저작 <우신예찬>엔 그가 평생 간직해온 자유정신의 요체가 담겨 있다.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스툴티티아는 황금의 신(플루투스)과 ‘젊음’이라는 님프 사이에서 태어난 어리석음의 여신(우신)이지만, 자부심만은 지혜의 여신(미네르바)을 능가한다. “내가 없다면 이 세상은 단 한순간도 존재하지 못한다”, “오로지 현명한 통찰로만 대처하려 드는 사람은 인생의 즐거움을 스스로 빼앗아 버리는 자이다”, “어리석음만이 인생의 치료약이다.” 아마도, 인간의 본질을 유희의 관점에서 파악한 ‘호모 루덴스’ 개념을 주창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창조적인 ‘세계시민’ 에라스뮈스의 삶을 쓰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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