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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배 공범과 그 후예들

등록 2013-09-15 18:39수정 2013-09-16 15:27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교섭 기간에 일본을 방문한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부 고문이 요시다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의 영접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일본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한국의 전승국 지위 박탈을 공모함으로써 지금의 ‘일본 과거사 문제’를 만들었다. 아연 제공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교섭 기간에 일본을 방문한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부 고문이 요시다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의 영접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일본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한국의 전승국 지위 박탈을 공모함으로써 지금의 ‘일본 과거사 문제’를 만들었다. 아연 제공
미, 식민지배 책임에 면죄부
이승만 정부는 배상요구 포기
지금도 역사 비틀며 좌파몰이

미완의 해방-한일관계의 기원과 전개
이동준·장박진 편저
아연출판부·1만4000원

뉴라이트 계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가 국회 의원회관 강연에서 “현재 좌파 진영이 교육계와 언론계의 70%, 예술계의 80%, 출판계의 90%, 학계의 60%, 연예계의 70%를 장악하고 있다”며 우파의 반격을 역설했단다. 분야별로 자파 사고방식 소유자의 비율이 10~40%밖에 안 된다는 그의 고백에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한국이란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 10~40%다. 그날 국회 의원회관 모임에 참석한 50여명의 여당 의원들은 그 뉴라이트 집필자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아연)가 펴낸 동북아총서 제11권 <미완의 해방>을 읽고 나면, 그날 뉴라이트 집필자에게 보낸 여당 국회의원들의 박수와 환호가 자가당착과 자기부정의 비명처럼 들릴지 모른다.

<미완의 해방>에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정부 때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냉전의 전사, 2차대전 뒤 프랑스의 베트남 재식민화를 지지했으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때 한국의 전승국 지위를 박탈하고 일본 편을 들어준 존 포스터 덜레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 인용돼 있다. “과거 수세기 동안 서구 제국이 ‘물질적, 지적, 정신적 활기’를 유지한 결과, ‘미개발 지역’에 대한 차관이 주어져 ‘철도, 항만, 관개사업, 기타 형태로 거대한 투자’가 이뤄졌다. … 그리하여 서구 여러 나라는 ‘무역이나 투자에 필요한 정치적 안정에 아직 도달하지 않은 세계의 사람들을 위해 통치를 하게 됐다.’”

제국들의 식민지 약탈을 “정치적으로 우월한 서구”의 미개국 개발이요 시혜로 인식하는 이런 사고방식 아래서 덜레스는 프랑스의 베트남 재침략을 지지하고 지원했다. 그리고 일본을 일거에 패전국 지위에서 동맹국 지위로 끌어올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때 당시 전쟁(6·25동란) 중이던 한국에 대한 일제 식민지배가 국제법상 합법이었고 한국인들의 저항은 사실상 전무했으며, 일본이 한국에 배상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덜레스만 그런 건 아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광복 뒤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 결정을 내린 것도 덜레스적 사고의 연장이었으며, 그것은 우드로 윌슨과 그 전의 시어도어 루스벨트까지 포함한 미국 엘리트들의 전통적 사고방식이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미완의 해방>에서 오타 오사무 도시샤대 교수는 이런 미국과 일본을 ‘식민지주의의 공범’으로 규정한다. 그는 일본의 과거사 미청산과 이 때문에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한일 관계 교착, 말하자면 해방이 미완으로 끝난 것은 미국의 종용으로 1965년에 체결된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이 근본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이며, 그 협상이 잘못된 이유는 그것이 1951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라는 잘못된 틀 속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는 1947년의 이탈리아 강화조약 때의 식민제국들의 공모·결탁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 강화조약에서 연합국과 이탈리아는 전쟁 책임과 식민지 지배의 죄를 구분해서 이탈리아의 전쟁 책임 부분은 인정하고 배상을 물렸지만 식민지 지배에 대한 죄는 인정하지도 배상을 물리지도 않았다. 그것은 이탈리아의 죄를 물은 미국·영국·프랑스 등 연합국 자신들이 식민제국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일본의 패전과 한국 광복 과정에도 되풀이됐다. 패전 뒤 일본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재점령하려 했듯이 한반도를 계속 장악하려 했고, 미국은 디엔비엔푸 패전 뒤 프랑스가 쫓겨난 베트남을 차지하고 일본이 물러난 한반도를 차지했다. 미국은 베트남에선 실패했으나 한반도에선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를 긍정했고, 일본의 약탈과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이 아닌 냉전적 반공동맹 경협 차원의 청구권만 인정하고 서둘러 전후처리를 끝냈다. 일본이 한일 강제합병조차 불법이 아니라고 지금까지 주장하고 모든 과거사는 이미 다 청산됐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하나도 청산된 게 없는 한일 관계의 질곡이 거기서 비롯됐다. 패전 뒤 일본에서 한반도가 떨어져 나온 것은 ‘해방’이 아니라 패전국에서 ‘분리’ 또는 승전국에 ‘할양’된 것이며, 제국들끼리의 흥정 결과였을 뿐이라는 것이 오타 교수의 기본 시각이다.

이동준 고려대 아연 연구교수는 이런 맥락 위에서 박정희는 친일적이었지만 이승만은 반일이었다는 주장이 허구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 보상을 포기한 것은 (이승만의) 정부 수립 초기부터 구축된 법적, 정치적 판단이었고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광복 뒤 끊임없이 싸웠던 항일의 역사를 몰수당한 채 제국들의 흥정에 동조한 내부 협력자들에 의해 장악당했다. 그렇게 해서 기득권층이 된 그들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국들의 식민사관을 정통으로 떠받들면서 그 반대세력을 좌파로 몰아 탄압했다. 풀리지 않는 한일관계의 기원과 전개는 국회 강연장에서 박수치고·환호한 세력의 역사와 깊숙이 얽혀 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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