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사계절 제공
에너지가 넘쳐나는 청소년기
발산하는 길은 막혀 있고
어쩔 수 없이 몸으로 풀어내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발산하는 길은 막혀 있고
어쩔 수 없이 몸으로 풀어내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김선희 지음
사계절·1만원 우리나라 청소년은 시한폭탄이나 지뢰 취급을 받는 것 같다. 에너지는 일생에서 가장 왕성하게 넘쳐나는데 그걸 발산하는 길은 철저히 막혀 있는 것이다. 대학 입학 이후로 시간이 설정되어 꽁꽁 싸매져 있거나, 그나마 설정된 시간도 없이 땅속에 파묻혀 있는 아이들의 에너지. 시간만 돼 봐라, 누구든 밟기만 해 봐라, 아이들은 그렇게 벼른다. 그러는 한편 그 에너지를 파괴적으로 폭발시키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더 빨강>은 그것을 다루는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유괴당한 경험, 그것 때문에 쏟아지는 배려가 오히려 스트레스인 여자아이 미령은 매운 음식 찾아다니며 먹는 일로 자신을 다스린다. 이삿짐센터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해 정신연령이 일곱 살로 돌아간 아버지를 돌보아야 하는 남자아이 길동. 엄마는 치킨 집을 열고, 우상이었던 형은 치킨 배달을 하다가 집안의 돈을 모두 긁어모아 몰래 뛰어든 주식투자에 실패하자 종적을 감춘다. 너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는 미령의 질문에 길동은 속으로 대답한다. 나는 야동을 본다. 아이들은 그렇게 외로움과 절망과 소외감에서 오는 어두운 에너지를 몸으로 풀어낸다. 막다른 골목에 부닥친 상태에서 큰 폭발을 막기 위해 작은 폭발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혀가 타들어갈 정도로 매운 음식을 먹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리고, 자위를 하면서. 그러면서 그들은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외로울 때마다 보던 야동 대신 새로운 뭔가가 나를 채워” 줄 것을 원한다. 성적인 장면 묘사가 많은 이 소설이 야하게 읽히는 게 아니라 짠하게 읽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미령과 소통하며 달라지는 길동이 “이제 내 힘으로 외로움을 극복해 볼 생각”으로 컴퓨터에 저장된 야동을 모두 삭제하는 마무리는 그래서 안심이 된다. “내가 열 살쯤 더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길동이 대견해진다. 청소년기의 성적 욕구를 외로움의 표현으로 보아주면서 그 고통스러운 성장 과정을 몸을 통해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이 소설은 확실히 청소년 독자들의 지지를 받을 만하다. 제1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중학교 1학년부터. 김서정 작가·중앙대 강의교수, 그림 사계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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