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갈무리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조정환 대표, 신은주 운영대표, 김정연·오정민 편집자, 김하은 인턴사원.(아랫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작지만 강한 출판사 ⑪ 갈무리
갈무리 출판사를 조정환(57) 대표와 떼놓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1980년대 노동해방문학론을 정립한 대표적 진보 문예이론가였던 조 대표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수배자 신세가 된다. 갈무리는 수배생활 중이던 1994년 동료들과 함께 만든 출판사다. ‘갈무리’는 1980년대 운동의 역사에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그때까지 주요한 운동이념이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더는 설득력을 갖기 힘든 상황이었다. 조 대표는 도피생활 중에도 동료들과 함께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찾기 위한 모색과 공부를 계속했고, 그 결과물을 갈무리에서 책으로 펴냈다.
조씨가 찾아낸 새 대안은 ‘자율주의’였다. 조 대표는 자율주의를 “국가, 자본, 정당조직으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하며, 다중, 즉 국민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활동하고 다양성과 차이를 특징으로 하는 무리들이 스스로를 가치있는 존재로 여기고, 스스로를 조직화하려는 노력과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본격화한 운동으로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가 대표적 이론가다. 조 대표는 1990년대 중반 이를 한국에 처음 소개했다.
11일 찾아간 갈무리 사무실은 서울 서교동의 ‘출판사 골목’ 한가운데 있었다. 5층짜리 건물 1층에 출판사 사무실이 있고, 2~4층에는 갈무리에서 함께 운영하는 인문학 강좌·세미나 프로그램인 ‘다중지성의 정원’을 위한 강의실과 세미나실이 자리잡고 있다. 1994년 구로동 반지하 사무실에서 시작했던 갈무리가 이제는 명실상부한 ‘작지만 강한 출판사’로 성장한 셈이다. 조 대표는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도 겸하고 있다. 요즘 출판사들이 입 모아 “어렵다”고 하고 있지만 조 대표는 “초창기보다는 훨씬 좋아졌다”며 웃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매년 적자였어요. 너무 힘들어서 출판사 동료들이 외부 원고 입력, 학원교재 집필 등 ‘투잡’을 뛰어야 했죠.” 지금은 “대체로 수입과 지출이 맞아 떨어져” 무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조 대표, 운영대표인 신은주씨, 편집과 영업을 맡고 있는 오정민·김정연씨, 인턴 김하은씨 등 5명이 일하고 있다.
조정환 대표 90년대 수배 중 설립
다양한 자율적 삶의 소개에 역점
출판 방향도 수익보다 자율 우선 조 대표는 “갈무리는 자율주의적 삶의 경향을 발견하고 착안하는 데 참여하려는 출판사”라며 이를 위해 자율적 삶, 사유, 행위 양식들을 예술·사회분석·철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찾아내 소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19년 동안 펴낸 책이 163권이 쌓였다. 절판된 책까지 포함하면 200여권이다. 자율주의 경향의 책을 펴내는 시리즈인 ‘아우또노미아 총서’, 자율주의는 아니지만 “생각과 대화를 나누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좋은 책들”을 펴내는 ‘카이로스 총서’, 대담이나 강연을 엮은 ‘디알로고스 총서’, 노동자 등 소수자들의 시집을 펴내는 ‘마이노리티 시선’ 등이 주요 시리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의외로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1~3>(2만부)이다. “레닌의 전위정당론에 영향을 끼쳤고 네그리 등에 의해서도 재해석돼 출판을 한 것”인데, 정작 판매는 사관학교나 기업체에서 많이 이뤄진다고 한다. 조 대표가 쓴 <아우또노미아>와 <인지자본주의>, 자율주의 저술가 마커스 레디커와 피터 라인보의 <히드라>,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앎의 나무>, 김만수의 <실업사회>, 네그리와 펠릭스 가타리의 <자유의 새로운 공간>도 3000~5000부씩 팔렸다. 지난 5월 나온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분석>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책이 안 팔리는 현상’에 대해 조 대표는 영상문화의 발전, 인터넷의 등장 등 기술적 변화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도 같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적인 변화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사람들을 사유나 감정이 아니라 계산에 따라 움직이게 만들고, 표피적인 쪽으로만 관심을 불러일으켜, 계산에는 아주 강한데 느끼거나 생각하는 데는 둔감한 존재로 만들고 있습니다. 비정규직과 실업자가 늘어나 청년세대가 책을 살 돈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결국 ‘공짜’인 인터넷의 정보에 갇혀 버리는 것입니다.” 갈무리의 요즘 목표는 최소 1000부가량씩 팔리는 책을 매달 한권 정도씩 꾸준히 내는 것이다. “이익 개념이 지배적이 되면 모든 것이 망가집니다. 1000부 정도만 나가면 우리 사회와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어떤 책이든 내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익을 목표로 한다면 1000부 정도밖에 안 나가는 책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다중지성의 정원’도 수익을 생각하면 할 수 없는 활동입니다. 구성원들의 의욕이 꺾이지 않고 계속 책을 낼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벌어야겠지만, 우리 자신이 자율성을 잃으면 책을 더 많이 파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다양한 자율적 삶의 소개에 역점
출판 방향도 수익보다 자율 우선 조 대표는 “갈무리는 자율주의적 삶의 경향을 발견하고 착안하는 데 참여하려는 출판사”라며 이를 위해 자율적 삶, 사유, 행위 양식들을 예술·사회분석·철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찾아내 소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19년 동안 펴낸 책이 163권이 쌓였다. 절판된 책까지 포함하면 200여권이다. 자율주의 경향의 책을 펴내는 시리즈인 ‘아우또노미아 총서’, 자율주의는 아니지만 “생각과 대화를 나누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좋은 책들”을 펴내는 ‘카이로스 총서’, 대담이나 강연을 엮은 ‘디알로고스 총서’, 노동자 등 소수자들의 시집을 펴내는 ‘마이노리티 시선’ 등이 주요 시리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의외로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1~3>(2만부)이다. “레닌의 전위정당론에 영향을 끼쳤고 네그리 등에 의해서도 재해석돼 출판을 한 것”인데, 정작 판매는 사관학교나 기업체에서 많이 이뤄진다고 한다. 조 대표가 쓴 <아우또노미아>와 <인지자본주의>, 자율주의 저술가 마커스 레디커와 피터 라인보의 <히드라>,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앎의 나무>, 김만수의 <실업사회>, 네그리와 펠릭스 가타리의 <자유의 새로운 공간>도 3000~5000부씩 팔렸다. 지난 5월 나온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분석>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책이 안 팔리는 현상’에 대해 조 대표는 영상문화의 발전, 인터넷의 등장 등 기술적 변화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도 같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적인 변화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사람들을 사유나 감정이 아니라 계산에 따라 움직이게 만들고, 표피적인 쪽으로만 관심을 불러일으켜, 계산에는 아주 강한데 느끼거나 생각하는 데는 둔감한 존재로 만들고 있습니다. 비정규직과 실업자가 늘어나 청년세대가 책을 살 돈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결국 ‘공짜’인 인터넷의 정보에 갇혀 버리는 것입니다.” 갈무리의 요즘 목표는 최소 1000부가량씩 팔리는 책을 매달 한권 정도씩 꾸준히 내는 것이다. “이익 개념이 지배적이 되면 모든 것이 망가집니다. 1000부 정도만 나가면 우리 사회와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어떤 책이든 내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익을 목표로 한다면 1000부 정도밖에 안 나가는 책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다중지성의 정원’도 수익을 생각하면 할 수 없는 활동입니다. 구성원들의 의욕이 꺾이지 않고 계속 책을 낼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벌어야겠지만, 우리 자신이 자율성을 잃으면 책을 더 많이 파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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