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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9월 30일 교양 잠깐독서

등록 2013-09-29 20:06

어느 청년이 통과한 80년대의 이야기

사슴 사냥꾼의 당겨지지 않은 방아쇠
이해경 지음
문학동네·1만2000원

이해경의 소설 <사슴 사냥꾼의 당겨지지 않은 방아쇠>는 독특한 방식으로 1980년대를 돌이킨다. 소설은 주인공 한수가 고교 1학년이던 1979년 10월27일 아침 대통령의 죽음 소식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의 죽음과 더불어 한수의 인생도 탈이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떻게 탈이 났는가. 한수는 생부모에게 차례로 버림받고 피가 섞이지 않은 의부 및 누나 한숙과 함께 살고 있는데, 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간 부모가 80년 5월 광주의 희생자들에 속하게 된다. 그 사건 뒤 한수는 부모를 죽게 만든 ‘놈’(=전두환)이 자신의 삶을 훼방 놓고 있다는 생각으로 그를 제거하고자 칼을 갈기 시작한다. 칼을 품고 연희동으로 잠입하는가 하면 서울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할 예정인 ‘놈’을 현장에서 처단하는 등의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한수의 80년대는 지나간다.

소설은 ‘놈’을 향한 한수의 복수 의지와 그 계획 및 실행을 위한 노력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 여자친구 소영 및 우진·민호 등 남자친구들과 한수의 관계, 누나 한숙과 대학생 문오의 사랑과 이별과 재회 같은 청춘의 이야기가 섞여 드는가 하면, 80년대의 크고 작은 사회적 사건들과 유행했던 노래가 지나간 시절을 생생하게 되살려 놓는다. 과감한 생략과 비약, 도치, 간접화 등 작가의 서술 기법은 독자 쪽의 집중과 참여를 요구한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양치기 소년, 법정에 서다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도진기 지음
추수밭·1만4000원

1994년 미식축구 스타 오제이 심슨은 전처 니콜 브라운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에게 불리한 증거가 수두룩했지만 12명의 변호인단을 거느린 심슨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몇년 뒤 니콜 부모가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3350만달러 배상 판결을 받았다. 책은 형사와 민사 판결이 엇갈렸던 사상 초유의 이 재판을 곱씹으며 ‘형사재판엔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상기시킨다. 민사재판에선 50% 정도의 증거만 있어도 이길 수 있지만, 형사상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서는 100% 확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실제 판결이나 동화나 소설 속 이상한 재판 이야기를 다시 불러낸다. 거짓말로 동네 사람들을 괴롭혔던 양치기 소년을 법정으로 끌어내 죄형법정주의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고 아들의 머리에 사과를 얹고 활을 쏘았던 빌헬름 텔을 두고 미필적 고의인지, 과실인지 묻는 식이다. ‘이태원 살인사건’처럼 안타까움이 남는 사건을 두고서도 왜 그런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를 알려준다. 추리소설가 겸 현직 판사인 지은이의 의도는 책 뒤쪽으로 갈수록 명백해진다. 마지막 장에서 책 속의 판사는 피고가 무죄라 믿으면서도 유죄 판결을 내린다. 판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증거뿐이기 때문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모든 쓰레기의 기괴한 종점

플라스틱 바다
찰스 무어·커샌드라 필립스 지음
이지연 옮김/미지북스·1만8000원

서해나 남해의 외딴섬 한적한 해변에서 우리는 어김없이 절경의 앞자락을 장식하는 쓰레기 더미를 확인한다. 모든 쓰레기는 결국 가장 낮은 곳, 바다로 가게 마련이다. 거기서 자연적으로 분해가 어려운 플라스틱은 끝까지 남는다.

미국의 해양 환경운동가이자 선장인 찰스 무어가 1997년 태평양 한가운데서 발견한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양산하는 현대 문명이 여태 감춰온 마지막 비밀 장소였다. 대륙에서 1500㎞나 떨어진 망망대해에서 플라스틱이 둥둥 떠다니는 한반도 2배 가까운 바다를 탐험한 경험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이 책은 그가 이런 충격적 경험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에서 겪고 느끼고 배운 내용을 간추렸다.

그가 발견한 것은 언론이 묘사한 것 같은 거대한 쓰레기 산이나 소용돌이가 아니라 “묽은 플라스틱 수프”에 가깝다. 지은이는 큰 쓰레기보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부서진, 그러나 여전히 플라스틱인 물질이 심각하다고 본다.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은 플랑크톤한테 먹히고 물고기와 새, 거북 등을 거쳐 직간접의 피해를 일으킨다. 단지 위장관을 막을 뿐 아니라 비스페놀 에이(A) 같은 환경호르몬이 나와 생태계에 축적된다. 플라스틱 오염 문제와 별도로, 학사 학위조차 없는 지은이가 과학적 타당성을 얻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도 ‘과학과 전문성’ 측면에서 흥미롭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북송 문학의 최고봉 소동파의 삶과 문학

소동파 평전
왕수이자오 지음, 조규백 옮김
돌베개·2만원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표주박 술잔 들어 서로 권하니/ 하루살이 짧은 인생 천지간에 부쳐두고/ 끝없는 대해의 한 알 좁쌀인즉/ 내 삶이 한순간임을 슬퍼하고/ 장강 끝없이 흘러감을 부러워한다오.”

1082년 황저우 유배 시절, 쉰을 바라보는 소동파가 장강 위에 배를 띄워 적벽을 조망하며 소회를 노래한 <적벽부> 명구다. 소동파는 박인로, 윤선도 등 고려·조선 문인들도 반하게 했다. 하지만 북송문학의 최고봉인 그의 심오한 경지를 제대로 독파한 이는 드물다. 소동파학의 권위자인 왕수이자오 푸단대학 교수는 ‘정치가·경학자·서법가·화가’로서 그의 삶과 문학세계를 풍부한 원전 인용을 통해 간명하게 드러냈다.

아버지에게 문재를 물려받은 소동파는 자유주의자였다. 남을 따라 휩쓸리는 것을 혐오해, 죽석이나 고목을 즐겨 그리며 굴하지 않는 개성을 표현했다. 서법에서도 “점과 획은 손 가는 대로, 의도적으로 잘 쓰겠다고 추구하는 것을 번거롭게” 여겼다. 중앙 관직을 하며 당쟁에 휘말려 창작 위기를 맞은 그는 지방으로 좌천된 4년간 많은 시를 남겼다. 항저우 서호의 산수는 시가 “자연적으로 흘러나오게” 했다. 민생의 질곡을 목도하고선 “내가 평생 읽은 5천권의 책은/ 한 글자도 굶주림을 구하지 못한다니”라며 비탄했다. 지은이는 “소동파는 ‘대왕’과 ‘서민’이라는 귀천 구별을 부정하고 호연지기를 강조했다”고 썼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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