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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중학생들 꿈 키워준 학교 텃밭 가꾸기의 ‘마술’

등록 2013-10-20 19:54

그림 창비 제공
그림 창비 제공
전교 꼴등이지만 싸움 ‘짱’ 정태
꿈 없는 건호·끈기 없는 대풍 등
공부에 질려 방황하는 아이들
텃밭 동아리에서 ‘변화’ 찾아내

너 지금 어디 가?
김한수 지음
창비·1만원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 건호. 중학생이 된 뒤 주말마다 농사짓느라 죽을 맛이다. “중학생이 되면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어서 써야지.” 아빠는 그간 잘 주던 용돈을 딱 끊고 스마트폰 요금도 알아서 내란다. 아빠가 알아봐준 일자리는 아빠가 일구는 백평짜리 텃밭 일. 일할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공부하라는 다른 집 부모와 달리, 엄마는 한술 더 떠 시험기간에도 빨래에 청소에 설거지까지 부려먹는다. “나도 영어학원 보내줘~” 부아가 치밀어 졸라보지만 “혼자서 못하면 공부에 소질 없는 거야”란 천하태평 답이 돌아온다.

반면 ‘스펙 쌓기’에 매진하느라 새벽 2시까지 공부만 하는 모범생 지욱은 시험에서 세 문제 이상만 틀리면 엄마한테 죽은 목숨이다. 초등학생 때는 옷을 홀딱 벗긴 채 내쫓긴 적도 있다. 과외선생은 정들 만하면 잘리는 통에 공부에 방해만 된다. “너무 힘들어, 죽을 거 같아” 대들자 “그럼 죽자” 식칼로 응수한 엄마. 백지 답안을 내 반항해 보지만 두려움만 커질 뿐, 해소될 길 없는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간다. 급기야 칼로 손등을 긋는 자해 소동까지 벌인다.

입시경쟁에 찌들고 꿈의 부재로 방황하는 ‘중2’ 아이들이 주인공인 <너 지금 어디 가?>는 소설집 <봄비 내리는 날>의 작가 김한수씨의 첫 청소년 장편소설이다. 전교 꼴등이지만 싸움만으론 학년 ‘짱’인 정태, 걸어다니는 슈퍼마켓인 양 먹을 걸로 환심을 사며 부잣집 아들 행세를 하는 뚱보 대풍.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말 못할 비밀을 간직한 이들은 때로 엄청난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하고, 돈이 궁할 땐 친구 휴대폰에 손대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두려움과 상처, 분노, 체념이 옹이진 아이들이 변화의 길을 걷는 전환점은 학교 텃밭 동아리 활동이다. 작가의 학교 텃밭 가꾸기 체험이 녹아든 소설은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며 배우는 ‘노작교육’을 예찬한다. 엄마가 없으면 밥도 못 차려먹는 ‘마마보이’ 민석은 ‘은따’였지만, ‘일 머리’는 팽팽 돌아가 ‘짱’인 정태에게 이런저런 지시까지 내릴 수 있게 됐다. 칭찬을 들을 일 없었던 건호는 “낫질이 진짜 예술”이란 칭찬세례를 받아 우쭐해졌다. 끈기 없기로 유명한 대풍도 이를 악물고 쇠스랑질을 옹골차게 해냈다. 소설은 텃밭 동아리의 놀라운 마술에서 ‘새로운 학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학교에선 호기심이 일고 재미있는 일을 찾기가 어렵다. 만약에 우리가 뭔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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