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과학부, 100건중 35건 최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추진하는 창조경제 관련 사업 상당수는 이명박 정부 때 ‘녹색경제’ 사업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사업을 ‘녹색’에서 ‘창조경제’로 포장만 바꿨다는 얘기로 ‘창조경제 실체가 모방경제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이상일 의원(새누리당)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제출한 ‘2014년도 창조경제 사업 목록’을 녹색성장기획단이 내놓은 ‘2013년도 녹색사업 목록’과 비교·분석한 결과, 사업명이 같거나 거의 동일한 사업이 28.5%를 차지했다”고 27일 밝혔다. 2014년 예산안 가운데 ‘창조경제 실현계획 관련 사업’은 22개 부처 330개로, 6조490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이 가운데 94개 사업(예산 3조988억원)이 녹색사업과 동일했다.
부처별로는 창조경제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가장 심했다. 미래부 소관 창조경제사업 100건 가운데 35개 사업이 녹색사업과 동일하거나 유사했다. 이 사업들에는 소관 창조경제 예산(2조5513억원)의 63%인 1조6065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창조경제 관련 62개 사업 가운데 24개가 동일 또는 유사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환경부는 절반(각각 7개, 3개)이 녹색사업과 동일했다. 기상청은 소관 창조경제사업 3개 전부가 기존 녹색사업과 동일했다.
이런 현실은, 창조경제의 부실한 실체를 보여준다. 정권 차원에서 ‘창조경제’라는 어젠더를 내놨지만, 관료 집단은 기존사업을 가져다 포장만 새로 한 셈이기 때문이다. ‘분뇨처리시설’, ‘국제교류’, ‘주거환경 연구’ 등 창조경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심스런 사업 항목도 여럿이었다. 일반 국민이 보기엔 ‘꼼수’지만, 부처 쪽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한 경제관료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하려는 사업이라고 어필해야 예산당국이나 국회를 통과하기 쉽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상일 의원은 “단기간에 뭔가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증에서 과거 정부의 추진사업을 포장만 바꿔 계속하겠다는 의도로 보이는데, 차라리 녹색과 창조를 결합하는 시책을 내놓는 것이 포장만 ‘녹색’에서 ‘창조’로 바꾸는 것보다는 정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래부는 “과거 정부 정책의 장점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필요하다. 따라서 기존 사업도 창의성을 우선에 두는 창조경제의 취지에 부합한다면 포함시키는 게 당연하다”고 밝혔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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