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성란
하성란 지음
마음산책·1만3000원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는 1996년에 등단한 작가 하성란(사진)의 사실상 첫 산문집이다. <한국일보>에 1년 동안 연재했던 짧은 칼럼을 모은 책 <왈왈>을 2010년에 낸 바 있지만, 소설을 쓰는 틈틈이 쓴 나머지 산문들은 이 책에 수습되었다. “물의 착란, 어지러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무슨 소식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렜다. 이곳에 오길 잘했다. 오지 않고 집에 갔다면 여기 이런 장관이 있다는 걸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앞으로도 설렐 일이 생각보다 많을지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작가는 어느 해 여름 스무 날을 지방의 대학 기숙사에서 보냈다. 일상에서 벗어나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산책에 나섰다가 우산도 없이 굵은 비를 만나 온몸이 쫄딱 젖었다. 인용한 대목은 다음날 저수지의 다리 난간에서 경사진 수로를 따라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적은 것이다. 산문집에는 작가로서 살면서 겪고 생각한 것들,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며 딸이기도 한 여자의 일상, 작가가 머물렀거나 스쳐 지나 온 장소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 사회 문화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두루 담겨 있다. “돌이켜보면 실연했던 그 상심의 기간만큼 고요했던 적이 없었다. 나는 깊이 침잠했고 내 속을 응시했다. 내 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수만 가지 감정의 물결을 보았다. 나는 질투했고 질투하는 나를 창피스러워하기도 했다. 실연이 아니면 알지 못했을 감정들이다.(…)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해 쓰고 또 쓰는 동안 나는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러니 사랑을 잃은 자, 쓰라.” 실연의 아픔이 자기 성찰과 글쓰기로 승화되는 신비를 기형도의 시 <빈집>을 매개 삼아 알려준다. 붐비는 주말의 대형 할인점에서 계산 직전에야 물건을 담은 카트가 바뀐 사실을 알아챘다! 어떻게 할까? “사람들 사이를 다시 뚫고 들어가 장을 새로 보자니 너무 피곤했다. 대충 구매 물품이 비슷한 거 같아 몇 개는 빼고 그냥 담아 왔”단다. 웃음을 깨물게 하면서 동시에 어쩐지 서늘한 느낌 역시 선사한다. 이밖에도 쓰레기 뒤지는 남자를 등장시킨 단편 <곰팡이꽃>을 쓰기 위해 실제로 자신의 집 쓰레기봉투 속 내용물을 분석해 보았던 일, 어린 시절 작가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젊은 여자가 남의 남자를 넘보았다며 곤경을 당하던 모습, 아버지의 고향인 거제 구조라의 추억, 여자만의 경험인 월경에 관한 사유 등을 만날 수 있다. 글 최재봉 기자,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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