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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멕시코 국경의 여자들, 누구에게 살해됐나

등록 2013-12-29 20:05

2666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열린책들·5권 6만6600원
로베르토 볼라뇨(1953~ 2003)의 유고 소설 <2666>이 드디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작가가 죽고, 그 이듬해인 2004년 출판된 이 5부작 소설은 볼라뇨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었다. 스페인어로 모두 11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다섯권 중 가장 얇은 2부(제2권)도 작가의 장편 <칠레의 밤>과 비슷한 길이다.

자신이 죽으면 다섯권을 해마다 한권씩 따로따로 출판해 달라고 당부했던 볼라뇨는 권마다 문체와 주인공을 달리한 이 소설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로 읽히기를 바란 걸까?

그러나 사라진 작가를 찾아 나선 비평가들이든(1부), 우연히 그 작가와 운명을 맞댄 이들이든(2부, 3부) 아니면 작가의 기나긴 연대기이든(5부) 소설의 모든 것은 ‘죄악의 도시 산타테레사’(4부)로 수렴된다.

멕시코의 가상 도시 산타테레사를 무대로 한 4부 ‘범죄에 관하여’에선 1993년 1월 살해된 13살 여자아이 이야기로 시작해 1997년 발견된 18살 소녀의 시체로 끝맺기까지 5년 동안 한 도시에서 일어났던 100건의 살인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을 읽노라면 쓰레기장, 공사장, 공장 뒤편 등 틈새마다 잔혹하게 살해당한 여자들의 주검으로 채워진 도시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것은 허구가 아니다. 실제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 북쪽 국경도시 후아레스에선 1993년부터 2004년까지 멕시코 정부 추산 260명, 국제 인권단체 추정 500명 넘는 여자들이 고문당한 뒤 죽었다. 희생자는 대부분 공장지대에 살고 일하던 여자들이었다. 한 도시의 여자들 수백명을 이토록 잔인하게 학살한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것도 실제다. 소설처럼 용의자는 도처에 있으며 하나가 아닐지 모른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두렵게 한다. 그런데 왜 주인공들은 모두 산타테레사로 가는가. 칠레에서 태어나 멕시코에서 살다가 스페인에서 작가로서 생명을 얻은 볼라뇨는 왜 “우리의 저주이자 우리의 거울”이며 “공포의 오아시스”인 후아레스(산타테레사)를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삼았는가.

“아이가 무서워할 때 어떻게 하지? 눈을 감아. 강간당하고 살해될 것이라면 아이는 어떻게 하지? 눈을 감지.” 눈을 감아선 안 된다. 소설은 과달루페의 성모처럼 한쪽 눈이라도 뜨고 있으라고 속삭인다. “당신이 자신이 지닌 공포를 두려워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공포를 계속 생각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수수께끼 같은 제목 ‘2666’에 대해선 “언젠가 우리에게 다가올 시간”이나 “망각에 빠진 공동묘지” 같은 불친절한 단서만 남았다.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666이나 예수 재림을 뜻하는 1666년처럼 <2666>은 종말에 대한 소설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2666은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한 해를 뜻한다고도 한다. 성경에서 이 사건은 한 시대의 종말이면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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