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서 맨발의 겐
나카자와 게이지 지음, 김송이 옮김
아름드리미디어·1만2000원
나카자와 게이지 지음, 김송이 옮김
아름드리미디어·1만2000원
불교에서 말하는 팔열팔한의 지옥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그러나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사람들이 팔열팔한 지옥보다 더한 곳에서 보낸 시절이 있었다. 1945년 8월6일 미국 폭격기 에놀라게이가 세계 첫 핵폭탄 리틀보이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뒤, 여섯 살의 나카자와 게이지(1939~2012)는 그런 세상을 겪었다.
“깨진 유리조각이 전신에 박혀서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 온몸이 시뻘겋게 물들고, 유리조각이 빽빽하게 박힌 살갗은 마치 문신을 새겨놓은 듯 새파래지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착착 났습니다.”
“(사람들이) 손가락 끝에 50㎝나 되는 종이를 늘어뜨린 채 떼지어 걷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종이가 아니라, 열선으로 피부가 어깨에서부터 팔, 손가락 끝으로 흘러내린 것이었습니다.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느릿느릿 유령들처럼 걷고 있었습니다.”
“수조마다 불에 타 시커멓게 짓무른 시체들이 들어 있었어요. 불바다 속에서 도망가다 뜨거운 몸을 식히려고 들어간 거지요.”
피폭의 순간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뒤 그가 본 풍경들이다. 폭심지에서 1.3㎞ 떨어진 곳에서 피폭한 그가 살아남은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폭풍에 쓰러진 가로수 위로 학교 담장이 넘어져 밑에 있던 그를 3000도의 열선으로부터 보호해준 덕분이었다. 핵폭탄은 아버지와 누나, 남동생을 앗아갔고, 그날 조산한 여동생도 4개월 만에 저세상으로 데려갔다.
만화가가 된 나카자와는 당시의 이야기를 만화 <맨발의 겐>으로 그렸다. 1973년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를 시작해 1975년 1부(1~4권)가 단행본으로 엮인 이 만화는 1980년 한해에만 100만부가 팔렸다. 2부를 완성한 것은 1985년, 만화 집필을 시작한 지 10년을 넘기고서였다. 만화는 18개국 언어로 번역됐고, 영화와 애니메이션, 오페라로도 제작됐다.
독자들이 뜨거운 호응만 보낸 것은 아니었다. 피폭 장면이 너무 참혹해 ‘기분이 안 좋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에 대한 강한 반감으로 우려를 사기도 했다. 그의 만화에는 일본을 전쟁으로 몰고간 군국주의와 천황제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이 깔려 있다. 시마네현 마쓰에시 교육위원회 사무국은 지난해 8월 옛 일본군의 아시아 국가 사람들에 대한 학살 등에 대한 묘사가 너무 잔혹하다며 학교에서 <맨발의 겐> 열람을 제한하라고 지시했다가 만화가협회 등의 거센 반발로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전쟁과 핵폭탄만큼은 잊어선 안 됩니다. 전쟁은 그 재앙의 기억을 잊어버리면 또 일어납니다.”
이 책 <나의 유서 맨발의 겐>은 만화 <맨발의 겐>을 쓰게 된 배경을 글로 쓴 그의 ‘유서’다. 피폭 후유증으로 당뇨병과 백내장에 이어, 폐암까지 걸려 2012년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일찍이 예측하고 있던 재앙을 또 한번 만났다. 하여 다시 한번 ‘망각’과 싸우기 위해 이 책을 남겼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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