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그리다> 속 정 작가가 그린 아기자기한 만화.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에세이 ‘개를 그리다’ 정우열
10년 동거 ‘소리와 풋코’ 일기
사진과 만화로 따뜻하게 그려
“있을 때 잘하자” 깨달음 얻어
10년 동거 ‘소리와 풋코’ 일기
사진과 만화로 따뜻하게 그려
“있을 때 잘하자” 깨달음 얻어
만화가들은 유독 반려동물들을 사랑한다. 홀로 작업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동물들을 기르는 작가들이 수두룩하다. 와이어폭스테리어란 반려견 두 마리를 키우는 만화가 정우열(43)씨도 그렇다. 하지만 정 작가에게 반려견의 의미는 다른 작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에게 반려견은 작업에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 이상이다. 그의 만화 캐릭터가 반려견이고, 곧 그의 분신이다.
정 작가는 반려견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잔잔한데도 사람을 빨아들이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상시키는 만화를 그려왔다. 2004년 선보여 올해로 10년을 맞은 그의 만화 <올드독>은 제목처럼 나이든 개가 시시콜콜 잔소리를 해대고, 날카롭게 고민을 상담해주고,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 식견을 갖고 설명해주는 다양한 버전으로 인기 높은 장수 생활만화다.
사실 정씨의 반려견은 한 마리가 아니다. 제주도로 거처를 옮겨 만화를 그리는 정씨가 자기 일상을 에스엔에스에 올릴 때 꼭 등장하는 ‘소리’(12)와 ‘풋코’(11)는 정씨의 팬들에겐 너무나 친숙한 존재들이다. 하는 짓이 꼭 사람 같은 이 두 반려견과 알콩달콩 함께 사는 모습을 정씨가 사진으로 찍고 그린 에세이집 <개를 그리다>(알에이치코리아·1만5000원)가 최근 나왔다.
12일 전화로 만난 정 작가는 “외국에 갈 때마다 반려견 사진이 가득 담긴 예쁜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렀는데, 한국에는 그런 책이 별로 없어 내가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책을 낸 동기를 들려줬다. <개를 그리다>는 사진 300여 컷과 만화 32편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책이다. 지난 10년 동안 그가 소리와 풋코를 찍은 사진은 무려 수만 장. 일상이 책으로 이어진 것이다.
책 속 풍경은 나른하고 따스하다. 장난감을 물고 온 집안을 휘젓고, 빨래통에 담긴 빨래를 헤집고, 수건을 베고 드러누워 느긋하게 낮잠을 청하는 소리와 풋코의 일상이 이어진다. 그가 두 녀석을 키우며 느낀 감상들이 ‘육견일기’로 중간중간 들어간다. 정 작가는 “휴일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편하게 읽기에 딱”인 책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 담긴 메시지들은 은근한 울림을 준다.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세상을 돌아보고, 한 생명을 돌보는 책임감의 무게와 다른 종과 공존공생하는 방법 등을 나눠보고 싶었다”고 한다.
서문에 ‘개를 통해 세상을 배웠다’고 적었을 만큼, 두 반려견은 정 작가의 삶을 바꿨다. 시사만화를 그리다 생활만화를 그리게 됐고, 동물에 대한 애정은 돼지·소 등으로 넓어졌다. 2010년부터 그는 육식을 끊고 개들과 더 많이 뛰어놀기 위해 지난해에는 제주도로 이사까지 했다.
무엇보다 그가 개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있을 때 잘하자”라는 단순한 진리다. “개는 고작해야 15년밖에 살지 못해요. 만날 때부터 이별이 예정돼 있는 셈이죠. 곁에 있을 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애정을 나눠야 해요.” 이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최근 소리가 뇌종양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 작가는 소리의 투병을 위해 잠시 제주를 떠나 서울살이 중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제가 개들을 돌본 게 아니라 개들이 저를 먹여 살린 거죠. 이 책이 소리와의 마지막 추억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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