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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감각을 속이고 욕망을 키우는 불량식품

등록 2014-03-02 20:23

<공포의 식탁>
<공포의 식탁>
공포의 식탁
비 윌슨 지음·김수진 옮김
일조각·2만5000원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엠에스지(글루타민산나트륨)를 매일 평생 먹어도 안전한 식품첨가물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왠지 개운찮다. 그 물질의 찜찜한 뒷맛은 대체 뭐란 말인가?

영국의 음식 평론가이자 역사가인 지은이 비 윌슨은 각종 식품첨가물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예컨대 아스파탐은 암 유발 논란을 겪으며 1980년 미 식품의약국에서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1년 뒤 무해하다고 재판정됐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참모이면서 식품의약국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던 도널드 럼스펠드가 정치력을 발휘해 애초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그는 아스파탐 제조사의 최고경영자 출신이었다. 이에 지은이는 “(아스파탐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 한다. 내 몸에 나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맛이 싫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이 책은 표백제 빵, 쓰레기 소시지, 정체 모를 첨가물 같은 부정·불량식품의 역사를 다룬다. ‘식품 사기’는 근대화, 국가의 무책임, 소비자의 무관심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공중보건이 위험에 놓여도 정부는 자유방임주의에 따라 개입을 꺼렸고, 대중은 식품을 선별하는 감각을 잃으면서 고급 음식에 대한 욕망만을 키워갔다.

불량식품 논란은 ‘폭로의 과학’과 ‘기만의 과학’이 맞붙은 전쟁이었다. 영국에서 근대적 식품 상거래가 시작된 1820년대, 독일 출신의 식도락가이자 화학자인 프레더릭 아쿰은 최초로 불량식품의 유해성을 통렬하게 고발했다. 반면 언론과 정부는 시장의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그 결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불순물 덩어리를 삼켜야 했다. 반면 프랑스는 ‘생산자 책임주의’를 지켰고 “빵은 경찰의 소관이지 상업의 소관이 아니”라며 위반행위를 한 생산자를 엄벌했다.

미국 또한 영국 상황과 비슷했다. 1870~1900년 사이에 불거진 저질 우유 문제는 최초의 식품 안전 논란이었다. 1880년대 여성들이 나서서 식품 안전 운동을 벌였고 과학자와 탐사 작가들은 거대산업의 결탁을 폭로했다. 하지만 전쟁을 겪은 국민국가는 ‘대용 식품’을 애국적 수단으로 장려했고, 대중은 식품첨가물, 즉석 식품, 다이어트 식품, 영양강화 식품에 점점 더 열광했다. 지은이는 부정·불량식품이 가장 창궐할 때는 이처럼 사람들이 좋은 것을 선별하는 능력과 감각을 잃는 시기라고 본다. 해법은 이렇다. “원래 모양을 간직한 신선한 식품을 구매하라. … 무엇보다도 당신의 감각을 믿으라.”

식품 안전의 문제는 과학 논쟁뿐 아니라 경제·정치의 복잡한 쟁투 속에 놓인다. 설령 어떤 전문가 집단이 특정한 불순물을 무해하다고 선언한다 할지라도 나쁜 맛, 싫은 맛, 이상한 맛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기피할 권리’가 보장되도록 정부가 철저히 노력해야 한다고 이 책은 힘주어 말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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