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방송인
[토요판] 커버스토리 l 새내기들에 띄우는 편지
<불안> 알랭 드 보통 / 내가 지금 느끼는 불안은 어른들도 느끼는 그 불안함의 일부일 뿐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친구를 사귀는 게 쉽지 않거든요.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친해질 수 있는 그런 친구를 고등학교 때 꼭 만드세요. 또 옆에 있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경험들도 많이 했으면 합니다. 봉사활동 점수 때문에 돕는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또 고등학교 때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일주일에 여섯 시간 정도는 시간을 할애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로지 나에게 선물해주는 시간이 있어야 나머지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아프리카 동물들이 늘 사냥만 하지 않거든요. 걔네들 인생의 삼분의 이는 자고 노는 시간들입니다. 놀고 휴식하는 것이 절대 헛된 시간들이 아닙니다.
<구덩이> 루이스 새커 / 삽질하는 얘기다. 읽고 나면 여러분을 몰래 응원하는 내 심정을 알 것이다.
스포츠 보는 걸 즐기지만 한쪽 팀을 적극적으로 응원해본 적이 없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지면 아프니까, 약 오르고 속상하니까, 괴롭고 억울하니까, 마치 내가 진 것 같으니까. 애써 태연한 척, 경기를 관망하는 척한다. 내가 덜 아프려고 덜 응원하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팀은 있게 마련이다. 편들어주고 싶은 팀이 없을 리 없다. 비슷한 이유로,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여러분들을 응원하지 않을 생각이다. 속으로는 여러분들이 멋지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내색하지 않을 것이고 응원하지 않는 척할 것이다. 길고 긴 삶에서 간단한 승부 같은 게 있을 리 없지만 어느 순간 여러분들이 패배한 것처럼 느낀다면, 낙오한 것처럼 느낀다면, 나 역시 퍽 속상할 것 같다. 무척 괴롭고 아플 것이다.
<행복의 정복> 버트런드 러셀 / “굳이 행복을 고민하지 않고도 유쾌하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
친구든 영화든 가수의 사인회든 사소한 취미든 뭐든 앞뒤 안 가리고 좋아하는 대상에 한번 푹 빠져 사랑해보자. 앞으로 무엇이 될지보다 내가 뭘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어떤 일에 마음이 쏠리는지 시간을 들여 알아가는 시간도 갖자. 지금 뭘 꿈꾸든 그 꿈대로 살지 않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꿈도 계속 변한다. 다만, 내 관심사와 재주가 제대로 발휘될 곳이 어딘지 알 때까지 계속 뭔가 시도하는 자세와 용기를 몸에 익힌 사람은 꿈이 어떻게 변하든 결국 원하는 대로 살아갈 거다. 남의 의견은 잡혀가지 않을 정도로만 존중하면 된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온갖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하겠지만 다 필요 없고, 맘대로 살면 된다. 대신, 그 삶이 다른 사람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삶이라는 것만 잊지 말자.
<내일을 부탁해> 함께 일하는 재단 / “우리나라 직업 2만개,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 20개 그중 제일 소중한 건 내 꿈을 찾는 일”
한때 ‘있기없기’라는 말이 유행했다면서요? 유행했던 그대로 쓰자면 ‘있긔없긔’이죠. 우리들 삶 속엔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을까요? 제가 찾은 답안은 이렇습니다. ‘도전은 있고 연습은 없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모두 도전이었는데 연습이 아닌 실전이었어요. 왜 그러잖아요?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라고. 저 역시 깨달았습니다. 매 순간을 실전처럼 살지 않으면 결과도 안 좋고 혹시 어부지리로 좋은 결과를 얻는다 한들 그 성취감이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매 순간을 실전처럼 도전하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 비법 두 가지를 알려드립니다. 꼭 기억해두세요. 1.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내가 좋아하는 것, 재미있어하는 것을 찾는다. 2. 찾아낸 꿈을 위해 도전한다. 단, 즐겁게.
<빌뱅이언덕> 권정생 / 삶에 대한 종교적 낙관,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를 버리지 않는 저자의 신념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언젠가 고1 때 좋아했던 게오르규의 <25시>를 다시 읽었다. 으흠, 좋았지만 고1 때의 감동은 못 미쳤다. 엉엉 울면서 보던 그 소설이 평범한 ‘고전’으로 읽히고 말았다(보다가 졸았다는 말씀). 놀라운 감수성이 폭발하던 시기, 그게 걸맞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그대, 눈물이 적은가. <목로주점> <몽실언니>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어떤가. 너무 슬픈 건 싫다고? 그럼 배꼽 잡는 미국 아저씨 빌 브라이슨은 어떤가(그의 세계관은 별로이지만). 고등학교야말로 좋은 친구를 사귀는 최적의 시기라고들 한다. 그러면 책 좋아하는 친구를 사귀어보라. 당신의 독서 경험은 두 배로 늘어난다. 책을 통해 만난 친구는 평생을 간다. 게임도 좋지만 누가 게임을 책장에 꽂아두고 평생 보관하지는 않는 법.
<호밀밭의 파수꾼> J. D. 샐린저 /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많은 것’
난 “넌 왜 그것밖에 못 하니?” “그래 갖고서야 도대체 뭐가 될래?” 따위의 말을 수도 없이 듣고 “넌 괜찮은 아이야”라는 칭찬은 한 두번쯤 들으며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때 왜 더 많이 반항하지 못하고 주눅 들고 자책만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약이 오릅니다. 쓸데없는 열등감과 지나친 낙담은 시간을 좀먹고 마음의 키가 크는 걸 방해했더랬지요. 어른들의 잣대와 세상이 쳐놓은 그물에 그저 순응하지 말고 많이 고민하고 의심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무엇보다 나 자신을 긍정하고 존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자존(自尊)의 태도는 곧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데도 꼭 필요한 덕목이니까요.
<동물농장> 조지 오웰 / 인간 사회의 본질적 속성을 파헤치고 개인의 자각과 사명을 고취하는 우화소설 고전.
이른바 인생의 황금기라는 게 있습니다. 모든 의미에서 고교 3년이 그렇습니다. 비록 백이십 세를 살게 되어도 지금 여러분 앞에 열린 3년처럼 빛나기 힘들 것입니다. 육체는 더없이 강건하고 정신은 하늘 높이 비상합니다. 온 세상을 구하는 지혜도, 내 작은 이웃을 보살피는 심성도 이 시기 동안 결정적으로 배양됩니다. 여러분의 장래는 밝다는 믿음을 가지세요. 한 가지만 일러드리겠습니다. 아침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은 일생을 허비하기 십상입니다. 기도든, 공부든, 운동이든, 아니면 막연한 공상이든, 맑은 정신, 가뿐한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하기 바랍니다. 정돈된 아침을 여는 사람만이 풍성한 저녁, 찬란한 밤을 얻게 되는 법입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 힘든 일이 있어도 좌절하지 말고 꿈을 향해 조금만 더 힘을 내 보세요.
저는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지난 22년간의 스케이트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까입니다. 물론 주변에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고 응원도 많이 해주시지만 스스로를 돌이켜 반추하며 ‘나는 그동안 어떤 사람이었구나’를 깊이 있게 곱씹어보고 소중한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남과 달리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스케이트를 시작한 이후 단 하루도 내가 가진 꿈을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번만 더 산을 오르면 꿈에 다가가겠지, 한 시간만 더 스케이트를 타면 꿈과 가까워지겠지, 늘 자신과의 힘겨루기에서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자기 자신을 지배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꼭 지배하여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만의 삶을 살아가시길 응원합니다.
<3만엔 비즈니스-적게 일하고 더 행복하기> 후지무라 야스유키 / 철학 하는 발명가가 일러주는, 좋은 일 하면서 행복해지는 좀 다른 방법.
어릴 때부터 입시 공부를 하느라 친구가 없다고들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면 평생 곁에 있어줄 벗을 사귀면 좋겠습니다. 만일 유치원부터 입시 공부만 주로 했다면 나는 고등학교 가기 전에 일년 정도는 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일랜드에서 시행하는 전환학년제를 스스로 가져보는 것이지요. 푹 쉬면서 텃밭을 가꾸거나 집을 짓는 일을 돕는 등 관심 가는 일을 주변에서 찾아보고 누군가를 제대로 도와주는 경험을 해보거나 자신이 조립한 자전거로 여행을 떠나봐도 좋겠지요. 몸과 마음이 부쩍 자라면서 신나게 에너지를 발산해야 할 때이고 시대도 전환기라 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그즈음 일년을 오롯이 스스로 지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어요.
〈GRAMMAR IN USE〉 / 실사용을 위한 영어 기초를 닦는 데는 이게 짱인 것 같다.
대학생 때 갔던 다른 나라의 어학원에서 접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통해 세계관을 구성했다. 나이, 성별, 외모, 학력보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취향을 우선시하는 사람들, 인간에 대한 존중심과 속한 사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구체적인 삶의 목표나 지향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세계는 추상적이었고, 학교생활은 억압적이고 반복적이었다. 질식할 것 같았다.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마음의 피난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어학 공부 열심히 하시라고 당부드리고 싶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읽고 말하기 위한 공부. 한국 사회가, 국가 시스템이 엿 먹여서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피난가야 할 수 있으니까….
김중혁 소설가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박원순 서울시장
박찬일 요리사
심재명 명필름 대표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사장
이규혁 스케이팅 선수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문화인류학자
최서윤 <월간잉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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