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시대
폴 이왈드 지음. 이충 옮김. 소소 펴냄. 1만5000원
폴 이왈드 지음. 이충 옮김. 소소 펴냄. 1만5000원
진화생물학자 폴 이왈드 교수(미국 암허스트대)의 <전염병 시대>(소소 펴냄)는 현대 의학의 전통적 시각에서 보면 다소 도전적인 주장들을 담고 있다. 주장의 요점은 ‘암과 심장질환, 심지어 정신질환 같은 만성질환들이 전염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더욱 압축하면 ‘만성질환의 전염 가설’이자, 이왈드 교수의 명명을 따르면 ‘신 질병매균설’이다.
‘세균이 질병을 초래한다’는 매균설을 만성질환까지 확장한 그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이미 여럿이 나타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만성질병의 하나인 후천성면역결핍증, 곧 에이즈가 바이러스 전염에 의한 질병임이 드러났으며, 소화성궤양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세균에 의해 일어나며, 아데노바이러스와 비만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보고서가 속속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자궁경부암에 이어 동맥경화의 일종인 죽상경화증이나 정신질환인 알츠하이머병도 특정 세균들과 뚜렷한 상관성이 있다는 보고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만성질환은 그것이 세균·바이러스에 감염된 즉시 증상이 나타나는 급성전염병과는 다르게, 눈에 잘 띄지 않는 “느림보 전염병”이지 세균·바이러스와 무관한 질병은 아니라는 얘기다.
병을 일으키는 세가지 요인을 첫째 나쁜 유전자, 둘째 나쁜 환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균·바이러스 병원체로 요약해 지목하는 지은이는 현대 보건·의학이 만성질환의 유전자와 환경에만 눈을 돌리면서 전염성에 대해선 그동안 지나치게 소홀히 다뤄왔다고 비판한다. “나쁜 유전자와 나쁜 환경은 걸핏하면 엉뚱한 누명을 쓰곤 했다. 적어도 지은 죄 이상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일차적인 범인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다.”
‘다 증명되진 않았지만 이런 추론은 현대 우주론처럼 충분히 과학적이다’라는 그의 주장은, 이 책의 서문이 밝히듯이, 분자생물학·의학계 등에서 여러 비판을 받고 있다.
가설의 진위를 따지는 일은 아직 때이르고 골치아픈 일이다. 그렇지만 지은이의 주장은 만성질환의 병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귀기울여 들을 만한 가치를 지닌다. 또 세균·바이러스 병원체를 박멸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그 생존과 진화 전략을 제대로 이해해야 전염병의 통제전략도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세균·바이러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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