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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남국의 프랑스’ 건설 야욕 돛달고…

등록 2005-09-08 18:50수정 2005-09-09 14:22

장 크리스토프 뤼팽은  <붉은 브라질>
장 크리스토프 뤼팽은 <붉은 브라질>
2001년도 공쿠르상 수상작인 <붉은 브라질>(이원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의 작가 장 크리스토프 뤼팽은 국제 민간 의료구호단체인 ‘국경 없는 의사회’의 부회장을 역임한 의사 겸 작가다. <붉은 브라질>은 그가 1976년부터 브라질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벌인 구호활동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붉은 브라질>은 16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배 세 척에 나누어 타고 붉은 땅 브라질로 간 이주민들의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시대와 장소는 조금 다르지만 20세기 초 멕시코 이민사를 다룬 김영하 소설 <검은 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붉은 브라질>에서 브라질 이민을 주도하는 이는 몰타기사단 소속 기사인 실존인물 빌가뇽 제독으로 그는 ‘남국의 프랑스’를 건설한다는 애국주의적·팽창주의적 사명감으로 일행을 이끈다. 그는 아이들의 언어 습득 능력이 어른들보다 뛰어나다는 점에 착안해 일단의 소년들을 인디오와의 통역 요원으로 데려가는데, 주인공인 쥐스트와 콜롱브 남매가 그에 포함된다. 남매는 이탈리아에 있다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 믿고, 콜롱브는 배에 오르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소년 행세를 한다.

전체 4부 가운데 제1부는 프랑스를 떠나 브라질로 향하는 배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쥐스트가 아버지를 모욕하는 또래 소년 마르탱과 크게 싸우고서 한동안 배 안의 ‘감옥’에 함께 갇혀 있게 된 일이다. 두 소년은 이 일을 계기로 경쟁심과 의리가 뒤섞인 복합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데, 브라질에 도착한 뒤 쥐스트가 빌가뇽의 후계자로 키워지는 반면 마르탱이 빌가뇽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이며 적대적인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이 도착한 브라질은 애초에 인디오들의 땅이며, 프랑스에 앞서 포르투갈이 ‘선점’한 곳이기도 하다. 빌가뇽은 무리를 이끌고 육지에 곧바로 상륙하는 대신 육지 과나바라 만에서 멀지 않은 자그마한 섬을 근거지로 삼는다. 그곳에 요새를 짓는 것으로 ‘남국의 프랑스’ 건설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빌가뇽의 계획은 몇 가지 장애와 갈등에 부닥치는데, 그의 친구 칼뱅이 보내 준 신교도 지원단과의 종교적 논쟁이 그 하나다. ‘성체 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가 없는가’를 둘러싼 갈등은 양쪽의 심각한 충돌 위기를 거쳐 마침내 신교도들이 섬을 떠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되지만, 결국은 유럽 대륙에서 신교도와 포르투갈의 연합세력이 빌가뇽의 섬을 공격하러 오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소설의 주제의식과 연결되는 좀 더 중요한 갈등은 쥐스트와 콜롱브 사이의 것이다. 쥐스트가 빌가뇽의 ‘남국의 프랑스’ 건설 사업에 적극 찬동하며 결국 빌가뇽의 후임으로 사령관직에 오르는 반면, 콜롱브는 인디오 사회를 접한 다음 그에 매료되어 그 자신 하얀 피부의 인디오로 살아가고자 한다. 유럽인들이 소소한 교리의 차이를 놓고 서로 다투거나 남의 땅을 멋대로 침범해서 식민지로 삼는 데 비해, 인디오들은 평화롭고 성스러운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소설 <붉은 브라질>의 메시지다. 그 메시지는 일찍이 브라질로 건너와 인디오들에 동화되어 살고 있는 ‘현자’ 파이-로에 의해 이렇게 표현된다.

“신은 모든 존재와 모든 물체 속에 내재해 있어.(…) 인디오들에게는 만물이 신성한 것이지. 꽃, 바위, 산에서 흐르는 물. 무수한 정령이 살면서 사물이며 풍경과 존재들을 보호해주는 세상.”(448~9쪽)


소설의 결말은 남매인 줄 알았던 쥐스트와 콜롱브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두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서 결합하고 “전속력으로 달려 인디오들과 합류”(523쪽)하는 장면이다. 그에 앞서 구교와 신교,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다툼 끝에 파괴된 빌가뇽의 섬을 묘사한 다음 구절은 소설의 주제의식을 다소 노골적인 상징으로써 말해주고 있다.

“황폐해진 섬은 건강하게 온갖 색을 뽐내며 위용과 평화의 빛을 반짝이는 과나바라 만의 거대한 몸에 난 경미한 궤양성 피부암 같았다.”(522~3쪽)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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