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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당신의 흔적을 지워 드립니다

등록 2014-03-30 19:35

김중혁 작가
김중혁 작가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참신하고 발랄한 상상력을 만나는 것은 김중혁(사진)의 소설을 읽는 큰 재미 중 하나다. 그의 세번째 장편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독자의 그런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이 소설 주인공이 하는 일은 의뢰인이 감추고 싶어하는 흔적이나 비밀을 말끔하게 없애 주는 것. 이른바 ‘딜리팅’(deleting)이다.

누군들 감추고 싶은 비밀 하나쯤 없으랴. 비밀의 주인이 살아 있을 때엔 스스로 그 비밀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지만, 문제는 그가 죽고 난 다음. 사후에 공개되길 원하지 않는 비밀이나 흔적을 가진 이들이 경찰 출신 딜리팅 전문 탐정 구동치를 찾는다. 자신이 죽은 직후 해당 비밀과 흔적을 없애 달라는 것.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구동치는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고객들의 주문에 성실히 응하며 좋은 평판을 얻는다. 그런 그에게도 한가지 비밀이 있었으니, 고객이 없애 달라고 부탁한 비밀을 세상으로부터는 삭제하되 자신의 사무실 캐비닛 안에 꼭꼭 숨겨 놓는 것. 그러니까 구동치는 ‘보존하는 딜리터(deleter)’라는 역설적인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그가 소설 뒷부분에서 딜리터 일을 그만두기로 하는 데에는 이런 정체성의 ‘혼란’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추억일 수도 추저분한 흔적일 수도 있는 기억의 보존과 삭제라는 흥미로운 논점 그리고 인상적인 외모만큼이나 매력적인 주인공 구동치의 캐릭터는 이 소설의 장점이다. 작가는 단편에 비해 편안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과 추리적 구성으로 읽는 재미를 더한다. 딜리팅을 부탁하고 숨진 고객의 딸인 정소윤과의 희미한 애정 전선, 선배 형사인 김인천과의 사내다운 우정, 동료 탐정 이리와의 경쟁 속 협력이 다층적인 서사를 구축하며, 합기도 도장 관장 차철호와 철물점 사장 백기현, 식당 주인 겸 셰프 박찬일과 피시방 알바 이빈일 같은 개성적인 주변 인물들은 아기자기한 양념 구실을 한다. 그러나 대형 연예기획사의 명운이 걸린 영상을 둘러싼 각축이 은닉과 추적을 넘어 상해와 살인으로 나아가는 소설 후반부는 어쩐지 익숙한 장르물의 냄새를 풍긴다. 은거 무인(武人) 집단의 존재와 톱스타들의 충격 영상이라는 소재 역시 다소 작위적이며 자극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글 최재봉 기자,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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