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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진흥? 인문학 위기 사회과학으로 번져

등록 2014-04-13 19:27수정 2014-04-15 11:31

2011년 동국대 학생들이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학자들은 몇년 동안 이어진 대학의 구조조정 추진으로 대학정신이 위기를 맞았다고 입을 모은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1년 동국대 학생들이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학자들은 몇년 동안 이어진 대학의 구조조정 추진으로 대학정신이 위기를 맞았다고 입을 모은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부 진흥정책, 인문학을 도구화
대학구조조정, 사회계열도 위협
학계, 대학·지식사회 붕괴 우려
“인문학 열풍? 인문학 융합? 대학 안에 그 주체가 없는 것만은 틀림 없다. ‘고백·선언하는 사람’이라는 라틴어 어원을 가진 ‘교수’는 어디있나? 대학은 기업으로 전락했고, 정신은 실종됐으며, 교육은 지표로 평가받는다. 대학 자체가 위태롭게 됐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임순광 전 위원장은 이렇게 개탄했다. ‘인문학 열풍’ 담론 속에 정부의 인문정신문화 정책까지 강화되고 있다지만, 학계에서는 인문학이 정부 주도로 잘못 사용되고 있으며 괴사 위기에 놓였다는 비판이 봇물처럼 터져나온다. 이제 이런 불안감은 사회학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문화연대 정책센터와 공공운수노조연맹 세종문화회관지부가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연 문화정책 포럼에서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과 인문정신문화 진흥 사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 교수는 “유행으로서 인문학은 허상이고, 곧바로 효용이 나오는 기술 혁신을 위해 인문학을 도구로 동원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자본에 순치된 인문학, 경제적 효용을 먼저 생각하는 국가적 유용성 차원에서 접근하는 인문학은 오히려 학문의 위기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지난해 청와대에서 연 인문정신문화계 인사 오찬. 청와대사진기자단
아래 사진은 지난해 청와대에서 연 인문정신문화계 인사 오찬.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는 지난해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에 인문정신문화과를 신설해 정신문화 관련 법령을 제·개정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예산을 보면, 올해 인문학 대중화 사업비는 지난해 29억원에서 올해 60억원으로 2배 이상 증액됐다. 문체부의 인문학 진흥 사업 예산은 241억8100만원이 새로 배정됐다. 기존 도서관·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은 전년도 4억원에서 60억원으로 15배 껑충 뛰었고, 우수도서 구입 및 배포 사업도 45억원에서 152억400만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국민독서문화 진흥 지원사업엔 17억7700만원이 배정됐다.

그러나 오 교수는 정부의 이런 대중화·세계화 사업이 비판적 사유에 뿌리박은 인문학 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한다. 국가 주도로 한 성과중심,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인문학 중흥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문정신문화 진흥 예산의 약 90%가 대중화 및 세계화 예산이다.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국민 통합의 측면으로 사업을 진행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1970년대식 문예정책과 큰 차이가 없다. 예컨대 ‘아리랑 세계화’ 사업의 경우에도 민족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한 세계화라면 문화패권주의 또는 일방주의일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학 안에서는 인문학의 부흥은커녕, 정부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이 문사철(문학·사학·철학)과 기초과학을 마구잡이 통·폐합하는 것으로 이어져 지식사회를 허물어뜨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정부가 2023년까지 대학입학정원을 16만명 줄인다는 계획 아래, 학교 평가를 5개 등급으로 나눠 차등지원하거나 정원을 강제 감축하는 방안을 낸 바 있기 때문이다. 대학 구조조정 방안은 취업률이라는 잣대로 대학을 정원 축소와 통폐합의 길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인식이다.

비판사회학회는 오는 26일 경남대학교에서 여는 춘계학술대회의 주제를 ‘대학과 지식사회의 붕괴’로 정했다. 학회장인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하고 있는 대학구조조정이 대학에서 인문학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대학 스스로 시장성 없는 인문학, 기초과학, 사회과학 계열의 학과를 줄일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기초 학문인 인문학은 특히 구조조정의 일차적 대상이 되고 있으며 그 다음 순위는 사회학과 정치학 등 사회과학 쪽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이런 상황을 놔두고 정부가 인문 정신을 진흥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교수 단체들은 이런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정규 대학교원 6만명 가운데 1만명에서 2만명 정도가 일자리를 잃고, 가장 먼저 비정규 교수들이 타격을 잃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연구자는 “현재 지방 국립대까지 굉장한 구조조정 압력에 시달리고 있으며 각 학교마다 어마어마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 평가와 지원금을 연결시켜 아카데미를 장악하려는 시도는 학문 부흥이 아니라 고사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관련 연구자들은 몇년 전부터 인문학이 자발적으로 대중과 만나며 거리로 나선 건 대학이 인문학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자구책으로 ‘거리에 나앉은 것’이라고 진단한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과)는 2일 문화연대 토론회에서 “대학에서 인문학의 물적 기반인 교양과목은 취업용, 실용 과목에 대거 자리를 내주고 존립하기 어려운 상태다. 인문학의 대학 탈출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학문이 본래의 자유로운 정신을 지키려면 정부의 대중화 정책보다 대학의 자율성을 살린 진정한 물적 토대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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