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슬픔과 기쁨>
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지음
후마니타스·1만5000원
정혜윤 지음
후마니타스·1만5000원
‘쌍용차 사태’라는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현재진행형 숙제에 대한 단단한 기록이 나왔다. 5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이 사건의 선두에 서온 쌍용차 노동자 26명의 목소리를 르포에세이라는 형식으로 담았다. 2009년 4월 비정규직을 포함해 3000여명을 정리해고하겠다는 쌍용자동차의 발표.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77일간의 옥쇄파업. 경찰 특공대 투입. 94명 구속. 46억원 손해배상과 가압류. 세상을 떠난 24명의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19개월간의 노숙투쟁. 171일간의 15만V 송전탑 고공농성. 지난해 6월 ‘H-20000’이라는 자동차 1대짜리 모터쇼. 그리고 노란봉투 캠페인….
지난 5년 간 벌어진 이 일들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H-20000 모터쇼에 참석했던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피디인 지은이는 한발 더 들어간다. “이 자동차를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한 개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버거운 사건 앞에 놓인 평범한 개개인의 경험과 감정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묻고 기록한 26명의 육성은 펄떡펄떡 살아 숨쉬며, 귀와 심장에 그대로 꽂힌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은 해고되지 않은 ‘산 자’, 해고된 ‘죽은 자’로 양분됐다.
‘산 자’였음에도 박호민은 파업에 참여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산 자 중 파업에 참여한 사람은 200명 정도였어요.” 이현준은 사쪽의 심리전에 말려들어 동료들에게 느끼게 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77일간의 파업 때, 공장에서 나오면 해고자 명단에서 빼준다는 감언이설이 돌았어요. 같이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면 누군가 없어져요. 신뢰가 깨지는 것이 제일 마음 아팠어요.”
노조 간부였던 김정욱은 해고자 명단 통보 전에 다른 이들과는 살짝 다른 걱정을 했다. “내가 해고자 명단에 포함 안 되면 어쩌지? 다행히 명단에 포함됐더라고요.” 최기민은 한솥밥 먹던 동료들과 서로 적으로 맞서게 된 현실을 아파했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초기에는 서로 그렇게 격렬하게 싸우지 않았지만, 나중엔 서로 새총을 겨누게 됐어요. 회사가 ‘죽은 자 때문에 산 자들까지 다 죽을 것’이라는 소문을 냈어요.” 파업 안 풀면 다 파산한다는 사쪽의 공세가 먹혔던 거다.
‘혹독했던’ 쌍용차 사태와는 언뜻 연결되지 않는 ‘문학적’인 책 제목에 대해 지은이는 말한다. “이들이 웃을 때 눈길이 갔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인데 왜 저 사람이 웃고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쁠까? 근데 기쁜 동시에 슬프더라.”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서사가 문학적 향취를 품고 출간돼 더욱 반갑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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