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왼쪽부터), 김별아, 송종원, 박성원, 서희원, 윤고은, 윤성희, 정은경 등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예심위원들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출판 회의실에서 최종 예심 진출작들을 놓고 논의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예심
죽음을 소재로 다룬 응모작 늘어나
‘만가’ ‘킬링 톨스토이’ ‘프랑스식…’
23일 열리는 본심 진출작으로 뽑혀
죽음을 소재로 다룬 응모작 늘어나
‘만가’ ‘킬링 톨스토이’ ‘프랑스식…’
23일 열리는 본심 진출작으로 뽑혀
“많은 응모작들이 죽음을 다루지만, 거개가 개인의 죽음으로 그칠 뿐 공동체의 죽음이나 한 시대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행동과 그 행동이 만들어내는 서사에만 몰두하느라 인간의 정념과 내면에는 무관심한 작품들도 많았고요.”
7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출판 회의실에서 열린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예심. 문학평론가 서희원이 응모작들의 전체적인 경향에 대해 따끔한 지적을 했다. 소설가 윤고은 역시 “불치병 진단, 장례식, 남자의 죽음 뒤에 남겨진 내연녀, 숨겨진 딸의 연락처럼 죽음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는 독후감을 내놓았다. 지난해에 이어 심사를 맡은 소설가 윤성희는 “작년에는 황당한 장르소설도 많았는데, 올핸 그렇지 않고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였다”며 “그러나 강력하고 인상적인 이야기에 치중하다 보니 그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을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소설가 박성원 역시 “특별하고 기이한 소재에 기대어 서사를 이끌려는 작품이 많았는데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문학평론가 정은경은 “예년에는 사소설이 많았는데 올해 응모작에서는 그런 경향이 많이 준 대신 외모지상주의, 전원생활의 환멸, 보험금 감정사, 입양 같은 일상밀착형 소재가 많아졌다”는 독후감을 밝혔고, 소설가 김별아는 “응모자들을 크게 은퇴자, 백수, 문창과 출신으로 나눌 수 있을 듯한데, 은퇴자 소설의 경우 경험을 나열할 뿐 소설로서 더 크고 깊은 울림을 주는 데에는 역부족인 사례가 많았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 한겨레문학상 예심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송종원은 “보험사기, 연쇄살인 같은 소재가 있는가 하면 촛불세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쓴 응모작도 보였다”며 “대개의 응모작에서 정부 비판이 한두번씩은 나온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전반적으로 예심 통과작들은 재미있게 읽혔는데, 서사적 재미를 문장 차원에서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례도 보였다”고 말했다.
3월 말 마감한 제19회 한겨레문학상에는 예년과 비슷한 246편이 접수되었다. 예심위원 여덟명이 30편 정도씩 나눠 읽고 한편씩 예심 대상작을 골라 최종 예심에 임했다. 한 심사위원이 최종 예심 진출작 선정을 포기하면서 <나비의 꿈> <만가> <쑥전거리 인동침방> <킬링 톨스토이> <터널증후군> <프랑스식 파란 별> <하루> 일곱편이 이날 논의에 부쳐졌다. 이 응모작들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차례로 평을 말하고 본심 진출작을 추천한 결과 <만가> <킬링 톨스토이> <프랑스식 파란 별> 세편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본심 진출작으로 결정되었다.
<만가>에 대해 윤성희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물 형상화에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며 “읽고 난 뒤 감동이 남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는 슬프고 짠한 대목이 여럿 있었다”고 평했다. 정여울도 “죽음과 관련해 가장 힘든 이가 슬퍼할 시간도 없는 상주들인데, 이 소설은 그런 측면을 비롯해 죽음을 둘러싼 여러 디테일이 충실해서 신뢰가 갔다”고 말했다. 서희원도 “소설로서 가장 좋은 게 <만가>였다”며 “다만 죽음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백과사전 식으로 나열한 점이 거슬렸다”고 말했다.
윤고은과 정은경은 “소설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며 <킬링 톨스토이>를 적극 지지했다. 송종원도 “설득력 있는 반전에다 일정한 수준에 오른 대사 등으로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능력이 돋보였다”는 말로 이 작품을 추천했다. 그는 <프랑스식 파란 별>에 대해서도 “흡연을 둘러싼 사회 갈등을 다루어서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데다 잘 읽히는 이야기”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박성원 역시 “특별하고 기이한 소재가 아니라 있을 법한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낸 작품이어서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생긴다”는 말로 <프랑스식 파란 별>을 높이 평가했다. 같은 작품에 대해 김별아는 “단순히 흡연파와 금연파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더 커다란 사회적 욕망의 충돌이라는 차원으로 끌어올렸더라면 좋았겠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만가> <킬링 톨스토이> <프랑스식 파란 별> 세 응모작을 대상으로 한 제19회 한겨레문학상 본심은 23일 오후에 열린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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