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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마키아벨리, 한국 정치의 해독제

등록 2014-05-11 20:35

스트라파도(strappado) 고문. 공중에 매단 뒤 갑자기 떨어뜨렸다가 땅에 닿기 전에 멈춘다. 이렇게 두번 정도 하면 어깨가 부서지고 정신이 무너지는데 마키아벨리는 여섯번을 견뎠다고 한다. 그러고도 <군주론>을 썼다.   후마니타스 제공
스트라파도(strappado) 고문. 공중에 매단 뒤 갑자기 떨어뜨렸다가 땅에 닿기 전에 멈춘다. 이렇게 두번 정도 하면 어깨가 부서지고 정신이 무너지는데 마키아벨리는 여섯번을 견뎠다고 한다. 그러고도 <군주론>을 썼다. 후마니타스 제공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박상훈 옮김
후마니타스·1만5000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만큼 논쟁적인 책도 드물다’는 문장은 진부하다. ‘살인적인 마키아벨리’(셰익스피어), ‘악의 교사’(리오 스트라우스)라는 저주에서 ‘공화주의의 대변자’(스피노자·루소)라는 찬양까지, 양극단의 평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군주론>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 더구나 2013년에는 <군주론> 집필 500주년을 기념한 행사(마키아벨리 탄생 500주년이 아니다!)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열려, 마키아벨리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아직 <군주론>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사용해온 ‘마키아벨리스트’(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라는 의미)라는 표현를 쓰는 데 머뭇거리게 된 상황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여기저기서 마키아벨리를 들먹이는지 알고 싶은 독자라면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이 훌륭한 길잡이가 될 법하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액자소설 구조를 띠고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80쪽이 넘는 서문을 썼고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번역한 마키아벨리의 원문에 박 대표의 족집게 해설이 곳곳에 배치됐다. 군주론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해설을 곁들인 원문을 먼저 읽고 최 교수의 서문을 읽는 게 순서일 것 같다. 군주론을 이미 읽은 독자들은 마키아벨리의 현재적·실천적 의미를 담고 있는 최 교수의 서문에서 시작해도 좋겠다.

정치에 대한 도덕적 접근은
급진주의와 냉소주의 흘러
갈등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해법

박상훈 대표의 해설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 이를테면 군주론의 주요 개념인 비르투(주체적 의지·힘)와 포르투나(운명의 힘), 네체시타(불가피성), 그리고 프루덴차(실천적 이성)에 대한 설명이 그렇다. 박 대표는 이들 개념이 원문에서 출현할 때마다 각각의 개념이 사용된 마키아벨리의 문장들을 여럿 보여주며 개념의 속뜻을 거의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그리고 마지막 개념인 프루덴차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정리한다. “제대로 된 신생 군주란, 국가를 장악하고 개혁하며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불가피성(네체시타)이 요구하는 과업을 실천적 이성(프루덴차)을 통해 이해하고, 운명의 힘(포르투나)에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대신 비르투를 가지고 그 과업을 완수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제후국이 난립하고 ‘제자백가’들이 ‘백가쟁명’하던 시기였다. 특히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을 몰아내고 세운 피렌체 공화국의 고위공직자였다가 메디치 가문의 복귀 뒤 반메디치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스트라파도’라는 모진 고문을 받고 나서 농장에 은둔하며 장작을 만들고 새를 잡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군주론을 집필한,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오해와 논쟁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마키아벨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최장집 교수의 서문에서 찾을 수 있다. 최 교수는 마키아벨리가 한국 정치를 바꾸는 해독제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 교수는 서문에서 “이상주의·도덕주의의 전통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법과 그 실천의 내용 속으로 깊숙이 침윤되면서 정서적 급진주의를 창출하고, 쉽게 교조주의를 만들어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는 원천으로 작용해 왔다”고 진단한다. 정치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상주의·도덕주의적 접근이 현실을 도외시하는 정서적 급진주의와 교조주의를 낳았다는 해석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 갈등을 조절하는 현실적 수단으로 정치를 바라본다. 이에 반해 (이상주의·도덕주의에 침윤된) 한국의 정치는 (존재하는) 갈등을 부인하고 (존재하지 않는) 통합을 강조하면서 결과적으로 갈등 조절에 실패하고, 국민들을 냉소주의나 급진주의로 빠뜨린다. 이상주의·도덕주의의 역설인 셈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가 ‘있어야 할 것’의 당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바로 이런 현실주의적 접근이야말로 정서적 급진주의와 교조주의에 빠진 한국의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해석은 케임브리지학파의 공화주의적 관점(“마키아벨리는 정치를 권력 게임이나 자기 이익의 추구로 본 것이 아니라, 시민적 덕을 중심 가치로 삼아 정치 공동체를 건설하려 했다”)을 거부하는 것이다. 최 교수는 특히 케임브리지학파가 마키아벨리를 귀족주의적 공화주의자로 잘못 해석했다고 통렬히 비판한 존 매코믹을 인용하면서 “민주주의자로서의 마키아벨리”를 강조한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귀족보다 민중을 중시한 민주주의자였다.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임브리지학파의 공화주의적 해석이든, 매코믹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적 해석이든 마키아벨리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마키아벨리 이론의 전모는 민주주의적 통치 체제를 구성하는 두 측면, 그러나 두 측면이 정태적으로 병립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상호 관계를 통해 하나로 통합되는 것, 그러나 그 통합은 어디까지나 동태적으로 결합·재결합되는 실천의 영역, 정치적 행위의 영역에 위치할 때 일시적으로 포착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 점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위대함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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