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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도시들의 ‘세계정부’라는 실천적 몽상

등록 2014-05-25 20:04

도시들의 모범 사례는 네트워크를 타고 급속히 확산한다. 사진은 콜롬비아 보고타의 ‘자동차 없는 도로’에서 일요일마다 걷고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 중에서.  
 이후 제공
도시들의 모범 사례는 네트워크를 타고 급속히 확산한다. 사진은 콜롬비아 보고타의 ‘자동차 없는 도로’에서 일요일마다 걷고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 중에서. 이후 제공
뜨는 도시 지는 국가
벤자민 R. 바버 지음, 조은경·최은정 옮김
21세기북스·2만8000원

이 책의 원제는 ‘시장들이 세상을 통치한다면(If Mayors Ruled the World)’이다. 시장들이 세상을 통치한다니, 대체 어떻게?

시장들이 세상을 통치하도록 하자는 말은 ‘무능한 국가’ 대신 ‘유능한 도시’를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자는 얘기다. 사회학자이자 정치이론가, 열정적인 사회운동가인 지은이는 무능한 국가와 유능한 도시를 시종일관 대립시킨다. 가령 이런 것이다. “미국은 보편적인 환경 기준치를 준수하는 데 헌신적이지 않으나 로스앤젤레스는 자체 정책을 실시하여 불과 5년 만에 거대한 항만에서 탄소 배출 에너지 사용량을 최대 40%나 감축했다. 항만에서의 탄소 배출량이 로스앤젤레스의 탄소공해 전체의 5분의 2를 차지하던 터라, 이러한 조처 덕분에 도시 전체의 이산화탄소량은 16%나 줄어들 수 있었다.”

환경 문제만이 아니다. 신종 질병과 노동력 이동, 테러, 전쟁 등 세계가 직면한 난제들은 대부분 국경을 초월한다. 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이미 ‘지구촌’이라 불릴 만큼 작아졌는데도 국민국가들이 주름잡고 있는 세계는 전 지구적 문제들 앞에서 무력하다. 그것은 국민국가가 민족과 국경에 기반한 ‘주권’이라는 낡은 틀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주권의 역설’이다.

국민국가는 지구적 사안에 무능
도시들의 연대로 문제 해결 제안

국가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방해하고 방조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 주권 침해를 이유로 거부하는 바람에 사실상 폐기된 국제조약만 해도 부지기수다. “교토의정서, 여성차별철폐협약, 아동권리협약,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화학무기협약, 지뢰금지협약, 국제형사재판소, 해양법” 등이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총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전미총기협회(NRA)의 로비가 통하는 국가(연방 대법원)에 가로막혀 좌절했다. 펜실베이니아의 소도시 사우스파예트는 가스 회사의 굴착을 금지하려다 “작업 도시마다 그에 맞는 면허를 따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굴착 회사에 동조하는 주 또는 연방 당국의 방해를 받았다. 시애틀은 2011년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했는데 비닐산업계가 이에 반발해 주 또는 연방 당국을 이 싸움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기업들의 로비 말고도 지구적 문제에 대해 국가가 무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주도권을 쥐려 하는 국민국가적 속성이다. 이에 반해 도시는 실용적이며 서로 협력한다고 지은이는 역설한다. “기후변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처하는 측면에서 봤을 때, 그 영향과 충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것은 지방 정부”(지속 가능성을 위한 지역정부, ICLEI의 2011년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들이 거들먹거리며 원칙에 대해 말할 때 시장들은 쓰레기를 줍고 총기 규제 캠페인을 벌인다.”

지은이는 지구적 문제에 먹통이 되어버린 국민국가들을 대신해 도시들의 연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격식을 차려야 할 필요도 없다. 시의회 의원인 레이 콜론은 먼저 스페인 세비야로 가서 공공 자전거 대여 프로그램이 얼마나 혁신을 거두고 있는지 봤다. 이어 람 이매뉴얼 시장은 161㎞의 친환경 자전거도로를 시카고의 주요 도로에 놓겠다는 선거 공약을 했고 현재 그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장들은 어떻게 세상을 통치할 수 있을까? 지은이는 ‘세계 도시 의회’(전 지구적 시장의회)를 설립하자고 주장한다. 각 도시에서 투표로 선출된 시장 300~400여명으로 이뤄진 일종의 세계 정부다. 세계지방자치단체연합, C40, 시티 프로토콜 같은 네트워크가 이미 구성돼 있기 때문에 세계 도시 의회 구성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그는 이미 세계의 유명 도시 시장들을 찾아다니며 참여를 설득하고 있다.

지은이 벤자민 R. 바버는 미국 럿거스대학 명예교수이며, 뉴욕시립대 대학원의 ‘자선과 시민사회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는 사회학자이자 정치이론가다. 민주주의자이자 세계주의자인 그가 ‘지구적 문제’를 ‘지구적 차원’에서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이 책은 ‘실천적 몽상’이자 ‘몽상적 실천’이라 평할 만하다. 엄존하는 국민국가 중심 질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한계에 대한 해답은 뚜렷하지 않지만, 최소한 칸트의 영구평화론(세계적 규모의 법적 상태)보다는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터무니없는 몽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분들에게 지은이는 국가의 역사를 살펴보기를 권한다. 근대의 산물인 국민국가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같은 도시국가가 직면한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현했고, 이내 강력해졌지만, 지구촌 시대를 맞아 무력해졌다. 지배구조(거버넌스)는 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에 맞게 ‘재발명’해야 하는 것이다.

각 장에 독창적인 시정으로 주목받고 있는 세계의 시장들을 한명씩 소개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뉴욕의 마이클 블룸버그, 팔레르모의 레오루카 오를란도, 런던의 보리스 존슨, 슈투트가르트의 볼프강 슈스터 등 11명의 시장이 나온다. 11번째가 서울의 박원순 시장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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