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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슈퍼우먼의 잃어버린 자아 찾기

등록 2014-06-08 19:28

<여성 영웅의 탄생>
<여성 영웅의 탄생>
여성 영웅의 탄생
모린 머독 지음, 고연수 옮김
교양인·1만5000원
“요즘은 여성학 책을 찾질 않네요.” 얼마 전 집 공간문제로 내놓은 수백권의 책을 수습하던 헌책방 주인은 ‘시류’를 전했다. 20년 전엔 너도나도 찾던 분야였다는데, 여성학의 독자는 어디로 옮겨갔을까?

이 책은 ‘여성학 시즌2’를 연상시킨다. 그사이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일군 슈퍼우먼이 되었을 그들을 향한다. 여성학의 세례를 받거나 ‘어머니’를 거부하며 ‘내면의 아버지’를 따라 남성적 성공을 이뤘지만, 종착역은 무리한 성취욕 너머의 공허감이다. 여성학이 여성성의 분리를 통한 여권 신장에 방점이 있다면, 이 책은 남성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지하에 억눌러 가둬버린 여성성의 회복과 통합의 여정에 주목한다. 신화적 의미를 부여한 제목 <여성 영웅의 탄생>을 쉽게 풀면 ‘슈퍼우먼의 잃어버린 자아 찾기’ 정도 될 것이다. 성공의 사다리를 헉헉대며 오르던 순간 ‘뭐가 잘못됐지? 나는 어디에 있지?’라는 자각. 심리치료사인 지은이에게 찾아온 삼십대에서 오십대의 성공녀들은 “팔다리가 잘려나간 듯한 쓰라림의 절규”를 내질렀다.

지은이는 이들이 내면에 ‘아버지의 딸’이라는 ‘유사 남성’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전형적인 남성 영웅의 여정을 따라 학문적, 예술적, 경제적 성취를 이뤄냈다”고 분석한다. 질병을 얻거나 이혼을 겪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뭔가 잘못되어가는 느낌이 들 때 그들은 치유의 출발선에 선다.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융의 심리학에 기반한 여성 영웅의 정체성 찾기는 일정한 패턴의 순환 고리를 갖는다. 여성성 분리→남성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남성성과 동일시하기→괴물과 용을 만나는 시련의 길→정신적 메마름의 자각→어둠 깊이 내려가 잃어버린 조각 찾기→내 안의 어머니와의 재결합으로 모녀분리 치료하기→상처 받은 남성성 치유→남성성과 여성성의 통합. 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깊숙한 무의식의 모험을 하고 돌아온 듯하다. 내면의 아버지를 만족시키려 강한 척해오고, 시간은 부족한데도 거절을 못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등의 상담자들은 대지의 신 데메테르와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된 딸 페르세포네에서 원형을 발견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거미 할머니’에게서 지혜를 얻는다. 외부에선 깊은 우울증으로 보이는 ‘자발적 소외’라는 내면집중 시간을 거치며 잃어버린 감정과 직관, 유머를 회복한다.

“당신 내면의 남성과 내면의 여성은 전쟁을 치러왔다. 그들은 둘 다 상처 입었고 지쳐 있다. 그들을 갈라놓는 칼을 내려놓고 보살핌을 받을 시간이다.”

지은이는 남성중심 구조를 변화시키려면 “탐욕보다 협력을, 지배-피지배 관계보다 동반자 관계를 지향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통합된 새로운 여성 영웅이 탄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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