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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뇌물·이중계약·복마전…부패한 피파의 맨얼굴

등록 2014-06-15 20:04수정 2014-06-15 21:26

<피파 마피아>
<피파 마피아>
한 주를 여는 생각

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2만원
둥근 공이 다시 구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브라질 월드컵의 열기는 예전 같지 않다.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광장을 비우자는 제안이 나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스포츠 정치 분야 탐사전문기자인 토마스 키스트너가 쓴 <피파 마피아>를 보면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릴지도 모른다. 20년째 국제축구연맹(피파)의 어두운 이면을 추적해온 기자답게 지은이는 피파의 부패 사례를 꼼꼼하게 파헤친다. 그뿐만 아니라 축구와 정치가 어떻게 몸을 섞는지, 온갖 악행에도 불구하고 제프 블라터 회장이 어떻게 건재할 수 있는지 밝힌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으로 피파는 40억유로(5조5000억원)를 벌어들인다. 그런데도 피파의 재정 상태는 늘 좋지 않다. 그 돈은 다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피파 집행부가 얼마의 돈을 쓰는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이라곤, 회장과 사무총장, 10명 정도의 국장과 24명의 위원 등을 위해 3300만달러(335억원)의 예산이 잡혀 있다는 사실 정도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더 엄청난 돈을 뒤로 빼돌리면서 그 돈으로 조직을 관리한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피파 회장인 제프 블라터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 사석에서 뇌물을 두고 ‘산소’라고 하면서 낄낄대곤 했다.”

지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부패한 피파와 한국의 세월호 사고가 사실상 같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익추구 집단과 감독관청이 이처럼 밀접하게 맞물릴 때 참극은 피할 수 없습니다. (…) 규제가 줄어들수록 돈벌이라는 탐욕에 제동을 걸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집니다. ‘세월호’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보내지는 신호입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왼쪽부터 주앙 아벨란제 전 피파 회장, 제프 블라터 현 피파 회장, 월드컵 트로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
왼쪽부터 주앙 아벨란제 전 피파 회장, 제프 블라터 현 피파 회장, 월드컵 트로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

현란한 드리블 뒤에 숨은 피파의 비열한 반칙

축구선수들이 펼치는 현란한 드리블 뒤에 감춰진 피파의 추악한 진실. 지은이의 고발대로라면, 피파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마피아나 다름없다. “스포츠는 음험한 악당의 손에 너무 오래 방치되었다”는 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이 범죄 소굴을 어떻게 할 것인가.

<피파 마피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부패 교과서’ 정도일 것 같다. 돈과 권력에 환장한 인간군상들이 벌이는 여러 악행이 다 들어 있다. 매수와 협박, 배신과 협잡, 도청과 미행…. 세상의 언어가 부족할 만큼 추악한 만행으로 가득 차 있다. 대체 언제부터 국제축구연맹 피파(FIFA)는 썩은 내를 풀풀 풍기는 부패의 온상이 된 것일까?

아디다스 VS 푸마 독일의 스포츠 전문 탐사기자인 토마스 키스트너는 피파에 부패의 유전자를 심은 주인공으로 독일의 스포츠기업 아디다스 가문을 꼽는다. 독일 프랑켄 지역의 소도시 헤르초게나우라흐에서 형 루돌프 다슬러와 함께 구두를 깁던 아돌프 다슬러는 1924년부터 운동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치 정권에 적극 협력하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계기로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다. 살만해진 형제는 원수가 됐다. 루돌프는 1948년 푸마를 창업했다.

경쟁은 아들 대에도 이어졌다. 아버지 아돌프에 이어 아디다스 회장이 된 호르스트 다슬러는 푸마를 따돌리고 월드컵과 올림픽을 장악하기 위해 “스포츠 임원과 걸출한 선수의 정보를 모두 모아 관리하기 시작했다. 체중과 신발 사이즈는 물론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고객의 성향을 낱낱이 기록했다. 좋아하는 여성 타입도 빼놓지 않았다. (…) 이 걸물은 최측근에게 이 기록을 보여주며 케이지비(KGB) 정보보다 더 낫다고 자랑하곤 했다.” 이른바 ‘운동화 시아이에이(CIA)’, ‘스포츠 비밀정보부’의 시작이다. 전직 인터폴 간부 요원들로 이뤄진 운동화 정보부는 이제 피파 집행부를 위해 맹활약중이다.

공용어는 부패와 독재 1974년부터 24년 동안 피파를 지배한 주앙 아벨란제를 발탁한 것도 다슬러다. 아벨란제에 이어 98년부터 회장을 연임하고 있는 제프 블라터 역시 다슬러 사람이다. 다슬러는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를 통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지배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부패와 독재다. 사마란치는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장군 밑에서 주지사를 지냈다. 프랑코가 죽자 러시아 주재 대사로 갔다가 거기서 다슬러를 만났다. 벨기에에서 브라질로 이민 온 무기상의 아들인 아벨란제는 브라질과 볼리비아의 군사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블라터는 피파 회장이 된 뒤 나이지리아의 사니 아바차를 비롯한 제3세계의 잔인무도한 군사 독재자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피파에 부패의 유전자를 심은 건
독일 스포츠기업 아디다스 가문이다
24년간 피파를 지배한 아벨란제와
회장을 연임한 블라터를 발탁했다

피파의 마케팅 대행사는
1억4100만프랑을 뇌물로 썼다
개최지 선정과
피파 회장 선거때마다
호텔 방에는 돈 냄새가 진동한다

아벨란제와 블라터 피파의 모든 권한은 회장에게 집중돼 있다. 회장에게 불리하면 선거규칙마저 바꿔버린다. 1994년 아벨란제 회장에게 도전했던 당시 사무총장 블라터는 거의 모든 집행위원들이 해고되는 참사 속에서도 자리를 보전했다. 지은이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비밀 (…) 여차하면 당신과 함께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겠다는 겁박으로 노인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면서?”라며 둘의 검은 공생관계를 의심한다.

블라터는 피파로부터 받는 공식 활동비가 얼마인지 끝끝내 함구하고 있다. 대신, 한해 1조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이는 피파의 돈이 어디로 새어나갔는지 알 수 있는 실마리가 최근 나왔다. 피파의 마케팅을 대행해온 회사 ‘국제스포츠와 레저’(ISL)의 파산을 계기로 벌어진 재판에서 아이에스엘은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계 고위급 인사들에게 1억4100만프랑(우리돈 1600억원)의 막대한 돈을 뇌물로 바쳐온 사실이 밝혀졌다. 이 회사의 파산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돈이 2억9100만프랑이다.

바뀌기 전의 피파 엠블럼. 마스타카드가 자사의 엠블럼과 비슷하다며 문제제기한 바 있던 이 엠블럼은, 피파가 사기 계약의 대가로 마스타카드에 거액을 물어주면서 동시에 사라졌다. 돌베개 제공
바뀌기 전의 피파 엠블럼. 마스타카드가 자사의 엠블럼과 비슷하다며 문제제기한 바 있던 이 엠블럼은, 피파가 사기 계약의 대가로 마스타카드에 거액을 물어주면서 동시에 사라졌다. 돌베개 제공
비자 VS 마스타 입만 열면 거짓말인 피파 집행부의 행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 이중계약 사건이다. 피파는 비자카드와 독점광고 계약을 맺어놓고도 마스타카드와 또 계약을 맺었다. 마스타카드는 미국 법정에 피파를 제소했다. 피파는 미국에서 열린 재판 과정에서 위조 계약서를 증거로 내밀기도 했다. 지은이는 “어찌나 비열한 반칙인지 거칠기로 유명한 축구선수라 할지라도 새파랗게 질릴 정도였다”고 경악했다. 그러나 블라터는 건재하다. 마스타카드에는 9000만달러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주기로 했다. 당연히 피파 돈으로. 비자카드로부터 받은 ‘플러스 알파’가 누구 주머니로 들어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공연한 복마전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 피파 회장 선거는 공공연한 복마전이다. 주로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태평양의 섬나라들, 요즘엔 동유럽 국가들이 매수 대상이다. 투표가 있을 때마다 호텔 방에는 ‘돈 냄새’가 진동한다. 피파는 인터폴조차 기부금이란 명목으로 매수했다.

지은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심판을 맡았던 비론 모레노의 뇌물수수 혐의를 상세히 소개한다. “이 에콰도르 심판이 갑작스레 돈을 펑펑 물 쓰듯 하는 행보를 두고 세간의 의혹은 커지기만 했다. 월드컵 전만 하더라도 빚이 많아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모레노였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지난 6·4 지방선거 와중에 실수로 내뱉은 “내 능력이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발언이 진실임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책을 읽다 보면 너무 많은 고유명사들─대부분 모리배들─때문에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예전처럼 순진하게 월드컵을 즐길 수 있을까?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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