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기능이 상이하거나 정반대인 독특한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앞으로 만들 ‘세월호 기억저장소’도 헤테로토피아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사진은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이 놓고 간 신발이 놓여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미셸 푸코 지음,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1만2000원 토머스 모어(1478~1535)의 <유토피아>(1516)는 일종의 정치적 공상이었다. 모어는 썩어빠지고 폭력적인 체제인 16세기 영국을 대신해 현실에는 없는 어느 섬나라 이야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통치의 아이디어를 담았다. 프랑스 출신 철학자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에서 이런 관념 속 유토피아와 실제 있는 장소로서 “현실화된 유토피아”를 구분한다. 헤테로토피아는 “반(反) 공간, 위치를 가지는 유토피아들”, “기능이 상이하거나 심지어 정반대인 독특한 공간들”이라고 규정한다. 양가성을 가진 공간인 헤테로토피아는 ‘실제 공간’이라는 점에서 ‘없는 장소’인 유토피아와는 다르다. 푸코가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처음 쓴 건 1966년 봄 <말과 사물>에서였다. 그해 말 한 라디오 특강시리즈에서 그는 헤테로토피아를 “온갖 장소들 가운데 절대적으로 다른”, “일종의 반공간”이란 뜻이라고 막연하게나마 정의한다. 예컨대 헤테로토피아는 ‘묘지’처럼 도시 한가운데 있다가 마을의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의미가 변화하는 곳, ‘극장’처럼 여러 공간을 실제 한 장소에 겹쳐놓은 곳, ‘박물관’이나 ‘휴양지’처럼 시간과 단절(헤테로크로니아)을 동반하는 곳이다. ‘미국식 모텔’도 전면적으로 열려 있지만 불법적인 섹슈얼리티가 감춰지는 곳으로서 양가성을 지녀 이에 해당한다. 헤테로토피아란 중층적 의미가 경합하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강하다. 권력관계 드러내는 ‘현실 유토피아’
팽목항 혹은 세월호 기억저장소… 사실 ‘헤테로토피아’란 말은 푸코가 홀로 변화무쌍하게 개념화를 시도하다 그만둬버려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의 사후 발간된 이 책은 1966년 12월 푸코의 라디오 특강 원고와 일부 대담, 원고 등을 합친 것이다. 촘촘하고 엄격했던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등 정련된 글쓰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부차적인 문헌”이자 “문학적인 게임”(다니엘 드페르)으로도 평가된다. 그럼에도 이 142쪽짜리 얇은 책은 푸코의 사유로 들어가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사후 출판금지라는 유언을 거스르고 푸코의 20년지기 연인이자 동반자였던 사회학자 다니엘 드페르와 푸코의 유족들은 그가 생전 공적으로 말한 것과 쓴 글을 발간하는 것은 전집을 만드는 데 필수불가결하다고 판단해 여러 책들을 발간해오고 있다.
미셸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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