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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라진 공간과 삶을 글로 복원하다

등록 2014-06-22 19:01

윤대녕 작가
윤대녕 작가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현대문학·1만3000원

윤대녕(사진)은 초기작들에서부터 공간에 민감한 면모를 보여 왔다. 윤대녕 소설의 시간이 때로 구부러지거나 증발하는 일이 없지 않았지만, 그 공간만은 튼실하게 현실에 뿌리 내리고 있어 어쩐지 듬직했다.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라 표현되는 윤대녕 초기 소설들의 독특한 세계는 흔들리는 시간과 구체적·물질적인 공간이 마찰하면서 빚어내는 부조화의 조화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좋았다.

윤대녕이 자신의 삶과 소설의 배경을 이룬 공간 스물세곳으로 독자를 초대했다. 그가 새로 낸 책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은 고향집에서 술집과 영화관, 공중전화 부스를 거쳐 도서관과 광장까지 공간들을 중심으로 지난 삶을 재구성해 본 테마 산문집이다.

기억의 맨 앞자리에 놓이는 것은 댓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고요와 적막이 지배하던 조부의 고향집이다. 부모의 손을 놓친 채 “주위에 이웃집이라고는 단 한 채도 없었으며 보이는 것은 온통 밭뿐”인 조부 집에 맡겨진 아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몰라 종일 헛간에 들어가 있거나, 고서가 쌓여 있어 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는 사랑채 병풍 뒤에서 시체처럼 낮잠을 자기도 했다.” ‘상처와 고통’으로 기억되는 이 유년의 공간은 윤대녕의-삶까지는 몰라도-소설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과 그림자를 남겼을 법하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스쳐 가는 한갓 여행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 고속도로 휴게소, “나 자신과의 대면”을 위해 낚시에 집착했던 제주 바다, “부재했던 어머니의 자궁을 대신한 공간” 부엌, 부인과 아직 연애 단계에 들어서기 전 밤 열한시에 시작해 새벽 네시에 끝나는 영화를 함께 보았던 충무로 대한극장, 연애하듯 붙어 다녔던 남자친구가 죽기 얼마 전 함께 술을 마셨던 대학로의 술집까지 작가가 소개하는 공간들에는 지난 삶의 자취가 화인처럼 찍혀 있다. 그 공간들을 이렇게 글과 책으로 남기는 일을 두고 그가 “다름 아닌 삶을 복원하는 일”(‘작가의 말’)이라 쓴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이렇게 스물세곳 공간으로 지난 삶을 일차 정리한 작가는 이제 또다른 공간과 그 공간에서 펼쳐질 새로운 삶을 꿈꾼다.

“요즘 나는 가끔 이런 사념에 젖곤 한다. 또다른 장소와 공간들, 비록 그곳들이 언젠가 사라질 거라는 것을 알지만 오직 현존 속에서만 거머쥘 수 있는 삶에 뜨겁게 복무하기 위해 또다시 떠나야 하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그곳이 어디가 됐든 다시 혼자가 되어서 말이다.”

글 최재봉 기자,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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