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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위험한 계급’ 구출 안하면 남는 것은 지옥문

등록 2014-06-29 19:34

가이 스탠딩 영국 소아스대학 개발학과 교수
가이 스탠딩 영국 소아스대학 개발학과 교수
불안정한 밑바닥 ‘프레카리아트’
기본소득 보장 안되면 ‘재앙’ 예고
프레카리아트 : 새로운 위험한 계급
가이 스탠딩 지음, 김태호 옮김
박종철출판사·3만원

하나의 계급이 지구를 떠돌고 있다. ‘프레카리아트’라는 계급이다. 이들은 새로 세상에 태어난 집단이며, 자신을 자각하는 ‘대자적 계급’까지는 아직 아니지만, 분명히 형성중인 계급이다.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 데 기여하긴 했지만 조금도 향유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새로운 위험한 계급’이다.

<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박종철출판사)은 ‘프레카리아트’라는 계급의 성격과 그 때문에 펼쳐질 디스토피아를 전망하고, 정부가 이 문제에 조속히 응답해야 할 이유를 밝힌다. 지은이 가이 스탠딩 영국 소아스대학 개발학과 교수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잔뼈가 굵은 세계적 국제노동 연구의 권위자다.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제안으로 유명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공동창립자이며 지금은 명예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프레카리아트는 불확실하다는 뜻의 형용사(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결합한 조어로, 1980년대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처음 사용했다. 스탠딩은 일용직이나 파트타임 노동자를 지칭하는 데 그쳤던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의 뜻을 확장한다. 먼저 계급을 극소수의 부유한 엘리트, 안정적 화이트칼라인 ‘샐러리아트’(salary+proletariat), 전문가와 기술자를 합한 ‘프로피시언’(professional+technician), 그 아래 전통적인 ‘손일’을 하는 ‘노동계급’이 있다. ‘프레카리아트’는 맨 밑바닥이다.

프레카리아트의 핵심세력은 떠돌아다니는 ‘도시 유목민’, 온전한 시민이 아닌 거류민(이주노동자), 장애인 등이지만 점점 그 수가 늘어 지금은 돌봄과 돈벌이라는 이중노동에 시달리는 여성, 시시때때로 부서나 근무지를 옮기면서 직무불안에 시달리는 회사원, 구조조정으로 잘린 샐러리맨, 퇴직 노인, 부채 덫에 내몰린 청년들까지 포함한다. 스탠딩은 많은 나라에서 적어도 성인 인구 4분의 1이 프레카리아트에 속한다고 추정한다. 세계적으로 수십억명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엘리트 바깥에 있는 우리 모두’ 프레카리아트라고 선언한다. 전통적 의미의 노동계급과는 다른 글로벌 계급의 등장인 셈이다.

스탠딩은 이들의 등장과 성장의 이유를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지구화와 노동의 유연화로 삶의 불안정성이 폭넓게 번져나간 데서 찾는다. 프레카리아트는 ‘노동 시민권’을 보장받지 못하며 직업정체성도 없다. 하루 종일 심하게 멀티태스킹하며 모든 시간을 광란하듯 일에 쏟아붓는다. 취미를 만들거나 역사 공부 또는 민주주의적 토론을 경험할 ‘여가’가 없어 집에서 인터넷을 뒤지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수동적인 놀이를 하는 데 그친다. 가장 절박할 때 가족의 호혜적 부조, 국가의 사회보험, 회사의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없어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바빠서 사회적 사안을 숙고할 겨를도 없다.

엘리트 자본가만의 탓일까? 여기서 스탠딩은 책에서 다소 논쟁적 주장을 펼쳐놓는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자 중간계급, 노동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노동’과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과도한 ‘노동’ 중심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도 프레카리아트와 괴리감을 좁히지 못해 외면당했다고 본다. 자본보조금은 물론이고, 프레카리아트에게 배타적이면서 일부 노동자들에게만 이득이 되는 노동보조금도 불평등하기에 단계적으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불안의 징조가 엄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정치에서 떠나는 것’이 심각해지고 있는 까닭이다. 프레카리아트는 ‘시간 쥐어짜기’에 시달리기 때문에 골똘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얘기 나눌 여유가 있어야 하는 민주주의에서 멀어진다. 분노, 아노미, 걱정, 소외를 경험하기에 이민자 등 극빈층에 대한 반감을 형성하기 쉽다. 그래서 압축된 방송용 이미지 정치,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처럼 증오의 정치로서 이민자를 몰아내는 극단적 우익 정당에 휘둘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앙상한 민주주의’가 남게 된다. 2009년 미국 티파티, 2010년 일본 최대 프레카리아트 집단인 재특회(재일 조선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 2010년 말 극우 스웨덴민주당의 득세 등 전지구적 우경화는 프레카리아트 시대의 상징이다.

대세가 된 프레카리아트에게 희망을 주는 ‘낙원의 정치’를 하지 않는다면 이 ‘위험한 계급’이 우리 모두를 더욱 심각한 불평등과 폭력의 상태로 데려갈 것이라 그는 단언한다. 해법은 일자리나 노동이 아닌 더욱 풍부한 개념으로서 다양한 ‘일’, 시간을 확보해주는 ‘여가’, 그리고 기본적인 소득 보장이다.

중도좌파의 시대마저 끝나고 새로운 계급으로서 프레카리아트의 시대가 되었다는 스탠딩의 주장은 다가올 위협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세계 진보주의자들이 ‘낙원 정치’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남은 문고리는 지옥문밖에 없다는 예언이다.

한편 26일부터 29일까지(현지시각)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15차 총회에선 7명의 한국 참가자가 발표를 하며, 마지막날 차기 총회 한국 개최를 위한 프레젠테이션도 예정돼 있다. ‘프레카리아트 위험지대’로서 한국이 세계의 눈길을 받고 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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