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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강인한 네안데르탈인은 어디 가고…

등록 2014-06-29 20:17

왼쪽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왼쪽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700만년 걸친 인류의 진화 과정
학습능력 키운 크로마뇽인 승리
<사람의 아버지>
<사람의 아버지>
사람의 아버지
칩 월터 지음, 이시은 옮김
어마마마·1만5000원

동물과 달리 ‘메타의식’을 갖고 있는 인간은 스스로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을 인류로 확장해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기도 한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칩 월터는 이 풀릴 것 같지 않은 의문에 답변을 시도한다. 비록 “타임머신의 도움 없이 과거의 빗장을 열려는 노력”이 “사하라 사막에서 손전등 하나만 들고 차 열쇠를 찾으려는 시도”나 마찬가지라 할지라도.

그나마 최근에는 디엔에이(DNA)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인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여기에 기존의 방사성 탄소 분석에서 혁신이 이뤄지면서 지난 5년 동안 인간의 계통수가 대대적으로 수정됐다. 이 책은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최근의 연구 성과를 망라하면서 700만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 과정을 문학적이고 재치있는 비유와 함께 펼쳐놓는다. 찰스 다윈과 리처드 도킨스는 물론이고 ‘머릿니’를 이용한 유타대 연구팀의 주장(우리 조상이 2만5000년 전에 다른 인간종과 극동 지방에서 마주쳤다는)까지 종횡무진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문부호로 가득한 것은 지당한 일이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왜 27가지 인간종 중 우리(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는가? “동물을 봐도 사자와 호랑이, 흑표범과 퓨마는 공존한다. 고릴라, 오랑우탄, 보노보, 침팬지 역시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간은 오로지 한 종류뿐이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상식부터 수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고인류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이고, 우리가 현재 호모 에르가스터로 알고 있는 인간도 에렉투스 계통에 속한다고 믿었다. (…) 이제 고인류학계의 분위기는 우리가 호모 에르가스터의 후손이고, 또 다른 후손들은 사라졌으며, 호모 에렉투스와 아프리카를 떠나 동쪽으로 이동한 인간들은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다른 종들로서 결국 모두 멸종해버렸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멸종해버린 대표적인 종이 바로 네안데르탈인이다. 이들은 거의 20만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의 가혹한 환경에서 살았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과, 점점 강해지는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다 유럽 대륙의 맨 끄트러미 절벽(지브롤터 해협)에서 2만4000년 전 최후를 맞는다. 네안데르탈인은 크로마뇽인보다 더 강인하고 추위에 익숙했지만 첨단도구를 앞세운 크로마뇽인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일까? 두 인간종이 직접 전쟁을 벌인 흔적은 없지만, 유년기를 늘리는 방식으로 사회적 학습능력을 키운 크로마뇽인을 당해내지 못한 것일까?

“나는 홀로 남은 그가 얕아진 지중해 위로 높게 드리운 지브롤터의 벼랑 끝에 앉아, 스페인의 산들 너머로 해가 지는 서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믿고 싶다. 아마도 마지막에는 네안데르탈인의 돌출되고 경사진 이마 위로 창백한 빛이 차츰 사그라지다가, 마침내 기묘하게 불타는 듯한 붉은 해가 홀연히 사라지는 순간 이 유일한 네안데르탈인의 의식도 영영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지은이는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700만년을 1년으로 환산한 달력을 만들었다. 화석이 발견된 아프리카 사하라 남부 지명을 따서 사헬인이라고 불리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가 1월1일(700만년 전)에 등장한다. 사바나 유인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속하며 직립보행으로 유명한 루시는 7월15일(330만년 전)에야 나타난다. 네안데르탈인은 추수감사절에 가까운 11월19일에야 출현하고,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연말을 1주일가량 남겨놓은 12월21일에 가까워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우주에 존재하는 은하는 1000억개, 항성도 1000억개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한명의 인간 두뇌에 존재하는 뉴런도 1000억개다. 150억년에 이르는 우주의 역사에서 인간이 출현한 순간은 딸꾹질 한번 하는 시간만큼도 되지 않는다. 지은이의 마지막 질문은 ‘다음에 올 인간’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보다 무한정 더 똑똑”한 “이른바 사이버 사피엔스로 변해갈지 모른다.”

지은이의 마음속에서 인류는 종말을 향해 달리는 어리석은 존재다. 그러나 그는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는’ 쪽을 택한다. “나는 우리 안의 아이, 즉 빈둥거리며 놀기 좋아하고 가망 없는 일에 도전하며 불가능을 꿈꾸고 그 이유를 캐묻는 우리의 특성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현재까지 존속시킨 원동력이다. 그리고 아마 다음에 올 인간에게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그림 어마마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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