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우주를 보다>를 쓴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미국 시워니대 생물학과 교수가 돋보기로 ‘만다라’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테네시주 남동부 숲 속 1㎡의 이 땅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년 동안 들여다봤다.
에이도스 제공
1년간 숲의 순환을 지켜본 기록
만물 조화 이룬 작은 생태계 묘사
만물 조화 이룬 작은 생태계 묘사
<숲에서 우주를 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2만원 숲 속 1㎡의 땅을 1년 동안 들여다본다고 1권의 책을 쓸 수 있을까. 미국 시워니대 생물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해냈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원제: The Forest Unseen)의 무대는 테네시주 남동부의 비탈진 숲이다. 한때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럽에서 온 개척자들이 농사를 짓던 땅이었으나, 지금은 지은이가 다니는 시워니대 소유로, 전기톱날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지대다. 지은이는 이 숲 속, 지름 1m짜리 땅에 ‘만다라’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1년 동안 틈나는 대로 찾았다. 한 해 동안의 순환을 지켜보되, 소란 피우지 않고, 아무것도 죽이지 않고, 어떤 생물도 옮기지 않았다. 돋보기를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뿐이다. 그곳엔 우주가 있었다. 이 작은 동심원 안은 이끼와 노루귀 같은 식물부터 달팽이, 도롱뇽처럼 눈에 보이는 동물뿐 아니라, 세균에 이르기까지 뭇 생명으로 가득했다. “개미가 더듬이로 덩굴손을 건드리자 꼬인 끈이 풀리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알겠다. 연가시다. 연가시는 착취 본능이 있는 괴상한 생물이다.” 연가시 애벌레는 달팽이에게 먹히고, 달팽이는 귀뚜라미에게 먹힌다. 귀뚜라미 몸속에 들어간 연가시는 물을 싫어하는 귀뚜라미의 뇌를 조종해 익사하게 한 뒤, 귀뚜라미의 체벽을 찢어버리고 자유의 몸이 된다. 밖으로 나온 연가시는 수십수백마리가 뒤엉켜 짝짓기를 한다. 이를 본 사람들은 연가시를 ‘고르디우스 벌레’라고 불렀다. “복잡하게 묶은 전설 속 고르디우스 왕의 매듭에 빗댄 표현이다. 매듭을 푸는 사람은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으나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매듭을 푼 것은 또 다른 약탈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었다. 그는 연가시처럼 숙주를 속이고 칼로 매듭을 자른 뒤에 왕관을 요구했다.” 지은이의 우주적 상상력은 인간이 유인원이었을 적, 아니 포유류로 갈라져 나오기 전의 파충류 시절, 원생생물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학과 생태학, 진화생물학을 아우르는 지은이의 깊은 공부와 오체투지의 자세로 몸을 사리지 않는 실험정신이 책을 살아움직이게 한다. 이를테면 지은이는 한겨울에 옷을 벗어던지는 실험을 한다. 첫 2초 동안은 시원했지만 이내 머리가 두통으로 지끈거리며, 몸에서 나오는 열기에 살갗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중계한다. 이에 반해 눈앞에 보이는 캐롤라이나박새(미국 박새)가 얼마나 훌륭한 보온장비를 갖추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솜털 한 올 한 올은 수천 개의 가느다란 단백질 가닥으로 이루어졌다. 이 작은 가닥이 모인 가벼운 솜털은 같은 두께의 스티로폼보다 보온효과가 열 배나 뛰어나다. 겨울이 되면 새들은 깃털의 개수를 50% 늘려 보온성을 높인다. (…) 미국박새가 겨울을 나려면 6만5000J(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중 절반을 몸 흔드는 데 쓴다.” 미국박새가 에너지 수지를 맞추려면 매일 500입의 먹이를 찾아야 한다. 만다라의 얼어붙은 숲에는 딱정벌레도, 거미도 보이지 않지만, 박새의 날카로운 눈은 나무껍질의 작은 틈새에 숨어 있는 곤충을 찾아낸다. “추위를 막아주는 문화적 적응의 혜택을 스스로 저버리고 나니 그야말로 난데없이 겨울 숲에 떨어진 열대 유인원 신세다. 이런 조건에 훌륭하게 적응한 미국 박새를 보니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책은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겨울에서 시작해 겨울로 끝난다. 그는 1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숲을 찾는다. 나방이 예비 신부에게 줄 혼인선물인 나트륨을 모으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에서 30분이나 주둥이를 박고 있는 걸 놔두기도 하고, 모기의 흡혈 행태를 관찰하기 위해 일부러 피를 빨게 두기도 한다. 한번은 단풍잎가막살나무 새순이 뜯겨나간 흔적을 발견했다. 사슴이 다녀간 것이다. 사슴이 맛있는 먹이를 잽싸게 뜯어먹은 뒤 포식자가 없는 안전한 은신처에 가서 느긋하게 씹을 수 있는 건 반추위(되새김질을 가능하게 하는 반추동물의 위) 덕분이다. 반추위로 옮겨간 화제는 현대 목축산업의 문제로 이어진다. “소를 목초지에서 떼어내어 우리에 가두고 옥수수로 살을 찌우려면 의약품을 투여하지 않고서는 반추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 (반추위에 사는) 미생물 조력자를 압살하지 않고서는 소고기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반추위를 설계하는 데 5500만년 걸렸고 산업농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는 데 50년이 걸렸으니 문제가 안 생길 수 있겠는가.” 불교가 상상하는 우주의 모습을 원의 형태로 그린 만다라라는 상징은 만물의 조화를 이룬 이 작은 생태계를 적확하게 묘사한다. 이 책도 하나의 아름다운 생태계를 이룬다. 과학에 바탕을 둔 정교한 지식과 인문학적 통찰에서 우러나오는 시적인 비유가 공생하는 언어의 생태계. 하버드대 교수를 지낸 세계적인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으로부터 “과학과 시를 넘나드는 자연문학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다. 통섭의 사유가 빚어낸 성과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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