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팅시티>
플로팅시티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문희경 옮김
어크로스·1만6000원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문희경 옮김
어크로스·1만6000원
정보화와 세계화가 상승작용을 하는 현대사회를 잘 보여주는 말 가운데 하나는 ‘흐름’(flow)이다. 사람과 자본, 정보가 국경 같은 경계를 넘어 흐르고 여기에 조응해 우리의 일상과 생각, 문화가 변해간다. 이런 유동적인 세상에는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틀짓던 계급, 인종, 지역, 교육수준 같은 요소의 규정력이 떨어지고 혼재된 흐름 속에서 새로운 관계들이 탄생한다.
<괴짜 사회학>이란 책으로 이름을 알린 사회학자 수디르 벤카테시의 후속작 <플로팅시티>는 세계화가 빚어내는 거대 도시의 새로운 사회현상을 기록한 연구일지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교수로 재직하는 지은이는 온갖 인종의 도가니이자, 억만장자와 부랑아가 공존하며, 복잡다기한 뉴욕의 뒷골목에 직접 뛰어들어 기존 사회학이 잘 설명하지 못하는 일들을 들추어냈다.
책의 제목에서 풍기듯 벤카테시가 뉴욕 같은 거대 도시에서 건져낸 새로운 현상의 핵심은 ‘부유’(float)다. 과거에는 계층과 지역의 경계 안에 머물던 사람들이 제자리를 떠나 전에 없던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하버드대를 나온 부유한 은행가의 딸이 친구 대여섯을 고급 콜걸로 거느리며 1년에 10만달러쯤 버는 매춘 브로커로 살아간다. 또 흑인 마약 판매상이 자신의 구역인 할렘을 벗어나 소호의 갤러리에서 상류층과 어울린다. 상류층 자제가 포르노 영화를 제작하면서 재능 있는 젊은 영화인을 발굴하려고 한다. 이런 일들은 지은이가 전작 <괴짜 사회학>을 쓰기 위해 갱단과 어울려 10년을 보낸 중서부 도시 시카고의 구획된 사회와 다른 모습들이었다.
이 책은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사회학이다. 지은이는 기존의 사회적, 경제적 구획이 많은 것을 설명해 주지 못하는 지금의 도시 환경에서는 “네트워크가 유동하는 세계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벤카테시가 지하경제라고 묘사하는 도시의 뒷골목을 택한 것은 이 때문이다. 벤카테시는 지하경제가 도시경제의 20~40%에 이른다는 데 주목한다. 지하경제는 장부에 기록되지 않고, 세무당국에도 파악되지 않는 경제활동을 말한다. 골목길과 빌딩 숲을 어슬렁거리며 이민자와 매춘부, 사교계 명사와 거리의 마약상들을 만나고 다닐 때만 조금씩 모습을 비치는 활동들이다.
사회학의 대가 피터 L. 버거는 “좋은 사회학은 좋은 소설과 같다”고 했다. 민족지학(ethnography)적 심층기술을 적용한 이 연구는 버거의 말에 부응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대규모 설문조사와 통계분석, 자기들끼리만 읽는 학술지 논문에 침잠하는 주류 사회학에선 얻을 수 없는 미덕이다.
이봉현 기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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