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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경기 진작이라는 미명 하에… 아이들은 세월호에 ‘태워졌다’

등록 2014-07-21 00:57수정 2014-07-21 08:05

한 주를 여는 생각

내릴 수 없는 배
우석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오는 24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0일이 된다. 참사 당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 국회의원들이 모였다. 제2회 ‘바다와 경제 포럼’ 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그 시간 단원고 학생들은 ‘바다와 경제’ 때문에 배를 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태워졌다’.

경제학자 우석훈(46) 박사의 새 책 <내릴 수 없는 배>(웅진지식하우스)는 세월호 참사를 정면으로 다룬 첫 책이다. 바로 ‘바다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다.

세월호는 ‘낭만 여행’으로 나름 유명했다. 우 박사도 몇달 전 병상에 있는 친구한테서 “재미있으니 한번 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에게 ‘정말 재미있더라’는 말을 해주려고 알아봤지만, 결국 포기했다.

“너무 위험한 배였다. 오래됐고, 과적과 불법 개축 가능성도 있었다. 두돌이 안 된 아들,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탈 수가 없었다. 좀더 부지런하게 위험성을 경고했더라면….”

이제 와서 ‘만약’이란 가정은 아무 소용 없지만, 정당한 문제가 제기되고 수용되는 사회였다면 참혹한 수학여행은 없었을 것이다. 참사 뒤에도 여러 목소리가 터져나왔지만 ‘배’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이들은 왜 그런 ‘배’를 탔고 앞으로 연안여객은 어떻게 할까? 놔두면 참사는 또 재연될지 모른다.

“이 문제는 한국 자본주의의 현재적 속성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 사회의 약자에 해당하는 고등학생들, 그들을 특정한 정치적 혹은 경제적 목표에 맞춰 투입시킨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결국 그 배를 타야만 했으니까.”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세월호 사건을 분석한 책 <내릴 수 없는 배>를 쓴 우석훈씨. 그는 “정치·경제적 이유로 누군가 반드시 그 배를 타야 했으므로, 한국 사회에서 약자인 고등학생들을 태운 것” 이라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사건을 분석한 책 <내릴 수 없는 배>를 쓴 우석훈씨. 그는 “정치·경제적 이유로 누군가 반드시 그 배를 타야 했으므로, 한국 사회에서 약자인 고등학생들을 태운 것” 이라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참사, 정치와 경제가 가장 슬프게 만났다”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진작에 이 배의 위험성을 알려야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국 사회는 학생들을 ‘아이’라고 여기며 그들의 뜻을 묻지도 않고, 경제적·정치적 이유로 ‘내릴 수 없는 배’에 태워버린 것이다. 서둘러 쓸 수밖에 없었다. 더 잊혀지기 전에.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간 것’이 아니다. ‘보내진’ 것이다. 부모의 돈을 노리는 산업을 만들고, 정책을 만들고, 배를 운용한 이들이 그렇게 한 것이다.”

경제학자 우석훈(46) 박사가 세월호 참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 <내릴 수 없는 배>(웅진지식하우스)를 썼다. 참사의 배경과 대안을 경제학 관점에서 풀어쓴 책이다. 한국 사회의 총체적 문제가 뒤얽힌 문제의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 것인가. 그는 ‘배’에서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보고서 정말 이상하다 생각했다. ‘배’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쓰면서 참 많이 울었지만 냉정하게 분석하려고 했다.”

우 박사는 이 참사가 “페리호의 수요 감소에 대처하는 공급의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고 본다. “경기 진작을 위해 위험한 배에 학생들을 태운 것이며 정치와 경제가 가장 슬프게 만난 것이다.”

그가 자료수집을 하면서 가장 당황했던 점은, 세월호가 저렴하지 않다는 점이다. 인천~제주 노선은 3등석 기준으로 편도 7만1000원. 저가항공보다 더 비싸거나 비슷한 가격이다. 그런데 왜 굳이 배에 학생들을 태웠을까? 책은 그 물음을 따라간다. 2000년대 후반부터 고유가로 인한 선박계의 위기가 터져나왔고, 때맞춰 저가항공이 등장했다. 그 여파로 1만t급 이하 페리 산업은 경제성을 잃었다. 그러자 고등학생 수학여행이라도 보내달라고 부산지방해양항만청·제주해양관리단이 교육당국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 한편, 국회에선 2011년부터 올해 5월까지 크루즈 관련 법안이 논의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던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 개정안’이다. 4대강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정부 여당은 ‘아라뱃길’(옛 경인운하)을 구상해놓은 상태. 국내 선박산업이 융성해야 뱃길이 이어질 것이므로 누군가 그 배를 타줘야 하는 맥락 안에 단원고 학생들이 배에 태워진 것이라고 우 박사는 분석한다.

실제로 국토해양부 자료를 보면, 2009년을 정점으로 한국 여객수송은 점점 줄었다가 배 타고 가는 수학여행이 본격화하면서 잠시 늘어난다. 엎친 데 덮친 격,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선박연령을 30년으로 10년 연장했다. 수익성 때문이었다. 캐나다나 스코틀랜드 등은 안전을 위해 연안여객 공영제를 도입했다. 일본은 배를 짧게 탄다. 배 나이 15년쯤 되면 대출해준 은행들이 상환 압박에 들어간다. 우리는 선박 수명을 늘리고 짐과 사람을 더 싣는 방법을 택했다.

“세월호 수학여행 비용은 1인당 35만원이었다. 그 일부를 나눠 페리호 산업의 탈출구로 삼았다. 불행의 출발은 국가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나눠먹기’를 보장해준 데 있다.”

‘까막눈’은 곳곳에 있었다. 그는 서울시교육청이 해운업계 쪽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한 협조요청 공문을 일선 학교에 내려보낸 사실을 확인했다고 책에서 밝혔다. 다른 교육청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란 얘기다.

책임을 방기한 교육부도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교육부 장관은 참사 뒤 지위가 격상돼 오히려 ‘부총리’가 됐다. “벌을 받아야 할 지도 모르는 조직이 상을 받은 셈”이다.

페리 산업이 경제성을 잃자
수학여행이라도 보내달라고
부산해양항만청·제주해양관리단이
교육청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
그런 맥락 안에서 학생들이 태워졌다

국가안전시스템은 권력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형태로 가고 있다
사고 초기 무조건 선체 진입하라는
최고 권력자의 명령이 있었다면…
이제 이런 배에서 내려야 한다

더욱이 국가안전시스템은 점점 권력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형태로 가고 있다. 이미 1993년 292명이 사망한 서해훼리호 참사 때 정부는 여객선 운항관리를 한국해운조합으로 넘기고 손을 뗀 바 있다. 10년 뒤 대구지하철 참사 때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재난이나 큰 사고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총괄하는 위기관리센터를 구축했다. 주요 해역과 원전 등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이를 폐지했다. 미국도 태풍 카트리나 사고 뒤 지휘 체계가 불분명하다며 재난관리 컨트롤타워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로 옮긴 바 있다. 우리는? 새 정부조직법에 따라 국가안전처는 총리실 산하에 신설될 예정이다.

“지금 조처는 재난 때 대통령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관료들에게 보낸 것이다. 국가안전처장이 어떻게 더 높은 장관, 군대를 지휘하겠나. 이번에도 사고 초기 무조건 선체에 진입하라는 최고 권력자의 명령이 있었다면 훨씬 적은 피해자로 조기수습 됐을 것이다. 안전 문제는 ‘윗선’이 많을수록 책임 없는 구조가 된다.”

‘배’에서 시작하는 진상규명 얘기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유가족이 제안한 ‘4·16 특별법’도 멀게만 보인다. 재발 방지를 생각해서라도 이제 배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작년 기준, 유일한 운송수단으로 배를 이용하는 인구가 연인원 350만명이나 된다. 대중교통으로서 연안여객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익성과 안전관리에 대한 논의를 시급하게 해야 한다. 인천-제주-서울-경기가 시범으로 선사 설립을 하면서 안전 관리와 운영을 동시에 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 박사는 신안군의 예를 든다. 6년에 걸쳐 경영난에 처했던 버스회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해 올해 완전공영제 버스 노선을 만든 전국 유일한 곳이다. 이번 참사에서 사고처리가 민영화되는 극단적 방식을 보며 그는 이런 공공적 해법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재해 처리에 민간 개입을 확대한 건 분명 민영화 방식이다. 예방의 공공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벌써 연안여객의 수익성을 정부가 보조하는 ‘준공영제’ 얘기가 나온다. 사기업의 배만 채우게 될 것이다.”

연안여객을 완전공영제로 한다면 선원들 또한 공무원 신분을 갖게 된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무책임의 문제를 완화하고 직업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연안여객 배 전체를 인수한다면 1조원 정도 규모다. “우리의 경제력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범위”다.

“불완전한 위기관리 시스템, 상황 판단의 실패, 이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바로잡지 않으면 너무 무서운 결과가 올 것 같다. 역사는 놀라울 정도로 되풀이되니까. 이제 이런 배에서 내려야 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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