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 소설집 <왈릴리 고양이 나무>
일도 음악도 사랑도 시들해진
세상서 튕겨나온 주인공들
내향적, 시적 정조로 상실 회상
세상서 튕겨나온 주인공들
내향적, 시적 정조로 상실 회상
조용호(44)씨의 두 번째 소설집 <왈릴리 고양이 나무>가 민음사에서 나왔다. 표제작을 비롯해 9편의 단편이 묶였다.
조용호씨의 소설들은 회상을 주된 서사 전략으로 삼는다. 조씨의 소설들에서 핵심적인 사태는 과거에 이미 벌어졌고, 남은 것은 그 여파와 마무리일 따름이다. 과거에 벌어진 사태는 주로 상실의 경험과 관련되는데, 주인공들이 잃어버리는 것은 배우자나 연인과의 사랑과 같은 개인적인 행복일 수도 있고, 80년대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공동체적 가치일 수도 있다. 아니, 공동체적 가치일 경우에도 그것은 이념의 동지이자 생의 반려인 배우자나 연인을 상대로 한 사랑과 결부되어 있기 마련이다.
어쨌든 주인공들은 “일도, 음악도, 사랑도 모두 시들해”지고 “모든 열정이 썰물처럼 빠져나”(이상 38쪽)가거나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의 바퀴로부터 바깥으로 튕겨 나온”(125쪽) 상태에서 “세상의 바깥에 누워 있”(178)거나 한다. 때로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유배의 길”(249쪽)이기도 하다.
주인공들이 소중했던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되는 계기는 화재와 교통사고 같은 재난, 또는 실직과 이혼, 자살과 병사 등으로 다양하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 또는 죽음과 마찬가지라 할 관계의 단절은 주인공들로 하여금 죽음과 상실에 이르게 된 과정을 되짚어 보게 하는 계기를 이룬다. 주인공들은 대체로 길거나 짧은, 또는 멀거나 가까운 여행길에서 상실의 과정을 반추하는데, 그럼으로써 조용호 소설들의 서사는 현재의 여행 이야기와 지나가버린 시절의 상실의 경험이 교차로 진행되는 양상을 띤다. 둘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상실의 경험이며 현재의 여행 이야기는 과거사를 끄집어내기 위한 구실로 쓰임은 물론이다.
상실의 서사라 요약될 법한 조용호씨의 소설에서 ‘잃어버리기 전’의 가치와 원칙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베르겐 항구>의 여자 선배, <사모바르 사모바르>의 대학 동기, <아이리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카르멘 올림>의 ‘아이리스’가 그런 가치 또는 원칙을 구현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을 배신하거나 그들과 공유했던 가치를 버리고 변절한 이들은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된다. 물론 조씨 소설의 주인공들 역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53쪽)라거나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라고”(158쪽) 공언은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자신들의 말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일찍 돌아왔어야 했는데”(170쪽)라는 한 인물의 회한 어린 대사는 소설집 전체의 주제를 요약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 소설의 핵심적 요소의 하나로 성격의 형성과 발전을 들지만, 조용호씨의 소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역동적이라기보다는 정적이며, 소설적 서사보다는 시적 정조가 우위에 놓이는 조씨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의 성격은 대체로 음울하고 내향적인 쪽으로 결정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상실의 경험을 반추하며 그 연유를 찾으려 하는데, 그것이 부활과 재도약을 위한 준비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그들 역시 “남은 자들은 그들대로 상처를 싸매고 새 삶을 살아야 한다. 세월은 사랑조차 부패시키지만 새살을 돋우어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54쪽)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소설은 “어디로 가야 할까”(172쪽)라는 방황과 주저, 더 나쁘게는 절망과 파국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출구는 없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상실의 경험이 절망의 정조로 이어지는 이 어두운 소설들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거꾸로 사랑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는 점이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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