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심포지엄-생명과환경
조항 내용 두루뭉실 환경보전 관련 국가의무만 규정 바람직
지난 14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헌법 다시보기’ 연속 심포지엄이 열렸다. 평화·여성·문화 등에 이어 ‘생명과 환경’을 주제로 한 네번째 자리였다.
발표에 나선 최윤철 건국대 법학과 교수가 중요한 사실을 하나 짚었다. 현행 한국 헌법의 환경권 관련 조항이 이미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환경권을 국민 기본권으로 규정한 우리나라 헌법은 매우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현행 헌법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35조)고 규정했다. 1980년 8차 개헌 때 등장해 지금까지 이어진 조항이다.
환경보호의 선진국인 독일이 환경관련 내용을 헌법(기본법)에 규정한 것은 1994년이다. 그나마 국민의 기본권 차원이 아니라 ‘국가목표조항’으로 환경 문제를 규정했다. 한국처럼 ‘환경권’을 직접 규정한 나라는 포르투갈·스페인 정도다.
문제는 획기적인 헌법 정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 교수는 “혹시 환경권 조항이 우리 헌법의 우수성과 선진성을 포장하기 위한 장식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등도 불명확하다”고 짚었다.
문제는 ‘그럴듯해 보이는’ 헌법 조항 내부에서 비롯된다. 독일이 ‘국가목표조항’에서 환경 문제를 다루면서 국가의 의무를 강조한 데는 이유가 있다. 최 교수는 현행 한국 헌법 조항처럼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할 경우, “환경보전에 대한 국가의 일차적이고 최종적인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근거가 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환경보전에 대한 국가의 의무만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현행 헌법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라는 문구도 문제다. 최 교수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 자연개발행위를 통한 주거환경 조성 등도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경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확장시키지 말고 ‘건강하고 쾌적한 자연환경’으로 고치는 것이 환경권의 구체적 내용을 확정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피해 당사자 개인의 권리구제요청에만 의존하던 것을 넘어, 환경단체 등 시민단체에게 소송자격을 부여하는 미국식 단체소송 또는 독일식 집단소송의 도입을 주문했다. 문자로만 존재하는 한국 헌법의 환경권 규정을 현실 사회에서 제대로 되살려 보자는 뜻이다.
‘헌법 다시보기’ 연속 심포지엄은 오는 27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자치와 분권’을 주제로 다섯번째 모임을 연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헌법 다시보기’ 연속 심포지엄은 오는 27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자치와 분권’을 주제로 다섯번째 모임을 연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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