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아룬다티 로이 지음, 노승영 옮김
시대의창·1만6800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노승영 옮김
시대의창·1만6800원
우리는 민주주의를 무엇으로 둔갑시킨 걸까?
인도 여성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던지는 질문은 아프다. 새로 나온 그의 정치 평론집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는 인도 민주주의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지만,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도 ‘남 일’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 한마리 육식동물로 합체하여 오로지 이윤 극대화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그의 진단은 세월호, 4대강, 밀양의 비극과 고통 앞에도 절실하다.
인도는 흔히 서방 언론에서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불린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일당독재 국가지만, 인도는 10억명이 투표하는 국가라는 식으로 세계에 홍보된다. 민주적 신흥 시장국가, 떠오르는 10억 시장…. 서방 언론은 이런 이미지를 선전하며, 친서구적인 인도가 중국의 대항마가 되길 은근히 바란다.
하지만 로이는 또다른 인도의 얼굴을 보여준다. 1989년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자, 비동맹운동의 맹주였던 인도는 잽싸게 방향을 틀어 새로운 일극체제의 군주인 미국 옆에 바싹 달라붙었고 국제 자본을 향해 경제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연합’(민족주의)과 진보(시장과 개발)의 시대가 왔다. 대규모 건설공사, 댐, 광산, 경제특구로 인한 홍수, 가뭄, 사막화 때문에 수천만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고, 매년 수만명의 농민들이 자살하고 있다. 강을 살리거나 숲을 지키자는 사람에게는 ‘반진보, 반개혁, 반민족’의 낙인을 찍었다. “소수집단이 다수에게서 땅과 강, 물, 자유, 안전, 존엄, 저항권을 비롯한 기본권, 한마디로 모든 것을 빼앗아 막대한 부를 누리는 분리주의가 벌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종교적 파시즘이 몰려왔다. 인도인민당(BJP)은 힌두 민족주의(힌두트바) 운동을 벌여 무슬림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다. 1984년 의석수가 단 두석에 불과하던 인도인민당은 ‘위대한 인도’의 광기에 힘입어 1998년 집권했다. 정권을 잡은 지 몇주 만에 핵실험도 강행했다. 인도인민당이 집권한 구자라트주에서 2002년 이슬람교도 2000명이 조직적으로 학살당하고 무슬림 여성들은 윤간당하고 산 채로 불태워졌다. 당시 구자라트 주지사로서 학살 사태를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는 올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신임 총리가 됐다. 이런 파시즘적 상황을 누가 키웠는가? 의회와 언론 등 ‘민주주의’ 기구들이라고 로이는 비판한다. “선거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고 민주국가인 것은 아니다. 정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미친 악마다.”
로이는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이후 정치 평론을 쓰고 댐 건설 반대 등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약자들 편에서 투쟁해 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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