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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위기의 정치, ‘공화주의’에 답 있다

등록 2014-07-27 19:59

<민주주의 구하기>
<민주주의 구하기>
민주주의 구하기
케빈 올리어리 지음, 이지문 옮김
글항아리·2만2000원

미국 건국 초기 인구는 300만여명이었다. 그러나 2014년 4월 현재 인구는 약 3억1780만명으로,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사람이 많다. 그런데 ‘정치 엘리트’는 극소수다. 상원 의원은 100명, 하원 의원은 435명뿐이다. 하원 의원 1명이 무려 65만여명을 ‘대표’해야 하는 것이다. 대의제는 유명무실하고, 민주주의는 늪에 빠졌다.

<민주주의 구하기─미국에서 날아온 하나의 혁신적 개혁 모델>은 초거대 공화국으로 탈바꿈한 미국에서 어떻게 민주공화주의를 실현해야 할지 방법을 탐색한다. 지은이 케빈 올리어리는 기자 출신으로, 예일대 정치학 교수 로버트 달의 후학이다. 달은 미국 정치학계의 거물로서 평생 민주주의와 인민주권의 문제를 탐구하며 정치적으로 평등한 시민들이 실천하는 ‘자기 통치’에 관심을 기울였다.

달의 계승자답게 지은이는 민주주의의 참여 문제를 중요하게 거론한다. 지난 200년 동안 여러 정치혁명을 거치며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에게도 공식적인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최근 수십년 동안 정치 엘리트와 대중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져 민주주의의 위기상황을 맞게 됐다. 19세기 중반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미국은 유권자의 70~80%가 동원됐지만, 2000년대 이르러 유권자의 절반만이 투표한다.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대중 배제로 민주주의 위기
주권을 인민에게 가져와야

3억 인구를 통치하는 대규모 공화국에서 소수가 정책을 좌우한 탓에 미국에서는 각종 부패가 잇따랐다. 특히 경제적 문제가 시민평등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2003년 미국 조세감축안은 미국 상위 1%에게 연평균 4만5000달러의 세금을 줄여줬지만, 소득 하위 60% 사람들한테는 고작 연평균 95달러를 깎아줬을 뿐이다. 이는 미국 헌법이 지닌 태생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헌법 초안을 마련한 제임스 매디슨과 입안자들은 민주공화국을 창안했지만, 기업이익집단과 정치권이 야합한 특권층 부패를 막지 못했다.

대중은 정치에서 점점 배제됐다. 사람들은 쟁점의 상세한 부분을 탐구하지 않았으며 자기 경험에 기반해 섣불리 사안을 판단해버렸다. 정치가 일부 엘리트의 경쟁으로 전락하고, 여론이 상징과 유행어에 손쉽게 휘둘리게 된 까닭이다. 지은이는 미국 헌법이 초기부터 강한 정부, 대중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정부를 지향한 점을 비판하며 정치와 대중의 간극을 좁히는 방안을 탐구했다.

이에 올리어리는 대의제를 거부하고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는 한편, 미국 전통의 토론인 ‘타운 홀’ 방식에 따른 인민원 제도를 실시하자고 제안한다. 435개 하원 선거구마다 지역민회를 설치하고, 파벌이나 비밀 후원에서 자유로운 배심 시스템과 비슷한 무작위 추첨에 따라 각각 100명의 대리인을 선출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 모두 4만3500명의 인민원이 활동하게 된다. 민회는 핵무기, 국제무역, 복지 문제 같은 국내외 쟁점을 공론장에서 심의한다. 민회의 전국 네트워크인 인민원은 ‘양원제 입법부의 편향’을 교정해 인민주권을 회복하고 헌법적 균형도 맞출 수 있다. 이것이 ‘시민의 자기 통치술’이다.

인민원 제도는 공화주의의 복권과도 연결된다. 올리어리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결과 미국식 민주주의가 자유와 개인권, 사적 기업을 보호하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분석한다. ‘냉전 전사’들은 자유·평등·박애라는 민주주의 핵심 가치 가운데 평등·박애를 사회주의에서도 인정받는다는 이유로 경시했다는 것이다. 그간 밀쳐뒀던 시민의 덕성, 공동의 심의, 공공선을 중시하는 ‘공화주의’의 회복은 ‘민주주의 구하기’의 핵심이 된다. 그럼 ‘자유’는 어떨까? 지은이는 말한다. “자유는 전체적으로 인민의 수중에 있을 때 더 안전하다.”

그러나 이 책은 국가를 사회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주체로 상정하는 한계가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 분담하는 ‘거버넌스’를 어떻게 할 것인지, 지역의 정치 편향은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남긴다. 그럼에도 ‘시민의 시대가 끝났고, 정부가 더는 시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매슈 크렌슨, 벤저민 긴즈버그)에 견주면 무척 희망적이다. 더욱이 민회의 민주적 대화 방법론, 재정 문제까지 폭넓게 검토하는 지은이의 현실적인 제안은 치밀하다. 부패로 얼룩진 소수 엘리트의 손에서 인민에게 주권을 가져오자는 아이디어는 ‘민주공화국’의 이념을 가진 대한민국에도 부합하며, 특히 공공성 문제가 불거진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에서 참조할 만하다.

옮긴이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는 1992년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폭로하는 양심선언을 하고 불명예 강제전역한 뒤 추첨에 따른 시민참여제도를 꾸준히 연구해왔다. 옮긴이 말에서 그는 “민주주의 자체가 좋은 사회를 보장하지 않는다. 바로 공화주의가 결합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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